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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5ì›” 11ì¼ ì¼ìš”켠오후 9:09
 
 

ì˜ˆìˆ˜ë‹˜ì˜ ê²‰ì˜·ì„ ë‚˜ëˆ„ê³  ì†ì˜·ì„ 제비 ë½‘ì€ ì´ìœ (3)
Ãֽо÷µ¥ÀÌÆ®
"êµ°ë³‘ë“¤ì´ ì˜ˆìˆ˜ë¥¼ ì‹­ìžê°€ì— 못 ë°•ê³  ê·¸ì˜ ì˜·ì„ ì·¨í•˜ì—¬ 네 ê¹ƒì— ë‚˜ëˆ  ê°ê° 한 깃씩 얻고 ì†ì˜·ë„ 취하니 ì´ ì†ì˜·ì€ 호지 아니하고 위ì—서부터 통으로 ì§  것ì´ë¼
···
ì´ëŠ” ì„±ê²½ì— 'ì €í¬ê°€ ë‚´ ì˜·ì„ ë‚˜ëˆ„ê³  ë‚´ ì˜·ì„ ì œë¹„ 뽑나ì´ë‹¤' 한 ê²ƒì„ ì‘하게 하려 함ì´ëŸ¬ë¼"
(ìš” 19:23~24) ...
       
 
  
 

행복한 ì‹ ì•™ìƒí™œì„ 위한 ì²´í¬í¬ì¸íЏ


11034
2014ë…„ 3ì›” 23ì¼ ì¼ìš”ì¼


"ë‚´ê°€ 오늘날 네 í–‰ë³µì„ ìœ„í•˜ì—¬ 네게 명하는 ì—¬í˜¸ì™€ì˜ ëª…ë ¹ê³¼ 규례를 지킬 ê²ƒì´ ì•„ë‹ˆëƒ"(ì‹  10:13) ë§ì”€í•˜ì‹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ìžë…€ë“¤ì´ ì‹ ì•™ìƒí™œì„ 행복하게 하기 ì›í•˜ì‹ ë‹¤. 과연 나는 행복한 ì‹ ì•™ìƒí™œì„ 하고 있는가? ì‹ ì•™ìƒí™œì˜ ìœ í˜•ì„ í¬ê²Œ ë‘ ê°€ì§€ë¡œ 대비해 ì ê²€í•´ ë³´ìž.


나는 수ë™ì ì¸ê°€, 능ë™ì ì¸ê°€?

ì‹ ì•™ìƒí™œì´ 수ë™ì ì¸ 사람과 능ë™ì ì¸ ì‚¬ëžŒì€ í™•ì—°í•˜ê²Œ êµ¬ë¶„ì´ ëœë‹¤. ë¹„ë¡ ê²‰ëª¨ìŠµì€ ë¹„ìŠ·í•´ ë³´ì¼ì§€ 몰ë¼ë„ ê·¸ 마ìŒê°€ì§ì€ 전혀 다르기 때문ì´ë‹¤.

수ë™ì ì¸ ì‹ ì•™ìƒí™œì„ 하는 ì‚¬ëžŒì€ ì˜ì¡´ì ì¸ ê²ƒì„ ë³¼ 수 있다. ìœ—ì‚¬ëžŒì´ ì‹œí‚¤ëŠ” 것만 하고, 누군가 ì´ëŒì–´ 주고 밀어 주어야만 한다거나 ì€í˜œë°›ì„ 때는 성령충만했다가 ì‹œê°„ì´ ì§€ë‚˜ë©´ ì ì  수그러드는 것ì´ë‹¤.

가령, 기ë„를 í•œë‹¤í•´ë„ ìˆ˜ë™ì ì¸ ì‚¬ëžŒì´ 10ì‹œê°„ì„ ì–µì§€ë¡œ 한다면 ê·¸ 기ë„ì˜ í–¥ì€ ë¯¸ì•½í•  ìˆ˜ë°–ì— ì—†ë‹¤. 강제로 ëˆ„êµ°ê°€ì— ì˜í•´ 마지못해 한다면 지칠 ìˆ˜ë°–ì— ì—†ì§€ 않ì€ê°€. 하지만 능ë™ì ì¸ ì‚¬ëžŒì€ 1ì‹œê°„ì„ ê¸°ë„한다 í•´ë„ ìžë°œì ìœ¼ë¡œ 간절하게 하게 ë¨ìœ¼ë¡œ ê·¸ 기ë„ì˜ í–¥ì´ êµµê³  진하게 올ë¼ê°ˆ 수 있다.

ì´ì²˜ëŸ¼ ìžë°œì ì´ê³  능ë™ì ì´ë¼ëŠ” ê²ƒì€ ê²°êµ­ ê·¸ ì¼ì˜ 가치를 아는 것ì´ë©°, ê·¸ ì¼ì„ 성취해 ëƒˆì„ ë•Œì˜ ë§›ì„ ì•„ëŠ” 것ì´ë‹¤.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ìžë…€ë“¤ì´ 건강하고 ì¶•ë³µëœ ì‚¶ì„ ì˜ìœ„하ë¼ê³  ê³„ëª…ì„ ì£¼ì‹  것ì´ë‹¤.

ë”°ë¼ì„œ 하나님 ì‚¬ëž‘ì„ ì•Œê³  ëŠë¼ë©° 순종할 때 í•˜ë‚˜ë‹˜ì˜ ì€í˜œì™€ ì¶•ë³µ ê°€ìš´ë° í–‰ë³µí•œ ì‹ ì•™ìƒí™œì„ í•  수 있다. ì´ëŸ° ì‚¬ëžŒì€ ì•„ë¬´ë¦¬ 어렵고 ë§ˆìŒ ì•„í”ˆ ì¼ì´ ìžˆì–´ë„ ì•„ë¦„ë‹¤ìš´ ì²œêµ­ì„ ìƒê°í•˜ë©´ ê°ì‚¬ê°€ 저절로 나온다. í•˜ë‚˜ë‹˜ì„ ì²«ì§¸ë¡œ ì‚¬ëž‘í•˜ê¸°ì— ì–¼êµ´ì— ê¸°ì¨ì´ 충만하다.

그러면 성ë„ë“¤ì´ ëŠ¥ë™ì ì´ì§€ 못하고 수ë™ì  ì‹ ì•™ìƒí™œì„ 하는 ì´ìœ ëŠ” 무엇ì¼ê¹Œ? 바로 ì‹ ì•™ì˜ ì°¸ëœ ì˜ë¯¸ë¥¼ 찾지 못하기 때문ì´ë‹¤. ì‹ ì•™ìƒí™œì„ 하는 분명한 ì´ìœ ì™€ 목ì ì´ 있어야 ì ê·¹ì ì´ê³  뜨ê²ê²Œ í•  수 있다. 하나님 ë§ì”€ 듣는 ê²ƒì´ ì¢‹ê³  기ë„하는 ê²ƒì´ ì¢‹ìœ¼ë©´ ìžë°œì ìœ¼ë¡œ 모ì´ê¸°ë¥¼ 힘쓰고 ì‚¬ëž‘ì˜ êµì œë¥¼ í•˜ê³ ìž í•œë‹¤.

베드로전서 2장 5ì ˆì— "너í¬ë„ ì‚° ëŒê°™ì´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ë„로 ë§ë¯¸ì•”ì•„ í•˜ë‚˜ë‹˜ì´ ê¸°ì˜ê²Œ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ì œì‚¬ìž¥ì´ ë ì§€ë‹ˆë¼" 하셨다. í•˜ë‚˜ë‹˜ì˜ ìžë…€ë“¤ì€ 예수 그리스ë„로 ë§ë¯¸ì•”ì•„ 하나님께서 기ì˜ê²Œ 받으실 만한 거룩한 ì‚° 제사를 드리는 ì œì‚¬ìž¥ì´ ë¼ì•¼ 한다.

물론 ì‹ ì•™ìƒí™œì€ ìžì‹ ì˜ 힘으로만 ë˜ëŠ” ê²ƒì€ ì•„ë‹ˆë‹¤. 그래서 ì‚¬ëž‘ì˜ í•˜ë‚˜ë‹˜ê»˜ì„œëŠ” 보혜사 ì„±ë ¹ì„ í•˜ë‚˜ë‹˜ì˜ ìžë…€ë“¤ì—게 선물로 주셨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ë„를 ì˜ì ‘하고 ìžì‹ ì˜ 죄를 통회ìžë³µí•˜ë©´ ë§ˆìŒ ì•ˆì— ì„±ë ¹ì´ ë‚´ì£¼í•˜ì—¬ 모든 ê²ƒì„ ìƒê°ë‚˜ê²Œ 하시고 가르치시며 진리 가운ë°ë¡œ ì¸ë„하시는 것ì´ë‹¤(ìš” 14:26, 16:13).

ì–´ëŠ ì •ë„ ë¯¿ìŒì´ 성장하기까지는 수ë™ì ì¸ ì‹ ì•™ìƒí™œì„ 하면서 ëˆ„êµ°ê°€ì˜ ë„움 ë˜ëŠ” ìƒë‹´ì„ ë°›ì„ í•„ìš”ê°€ 있다. 하지만 ì´í›„ì—는 얼마나 ì„±ë ¹ì„ ì˜ì§€í•˜ì—¬ 기ë„하고 ê·¸ ë‹µì„ ì–»ê¸°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 노력했ëŠëƒì— ë”°ë¼ ì‹ ì•™ìƒí™œì˜ 성패가 갈리게 ëœë‹¤.


나는 목표를 중시하는가, ê³¼ì •ì„ ì¤‘ì‹œí•˜ëŠ”ê°€?

ê¿ˆì„ ì´ë£¨ëŠ” ë° ìžˆì–´ì„œ 목표를 분명히 하는 ê²ƒì€ ë§¤ìš° 중요하다. 그러나 목표를 중시한 나머지 ê³¼ì •ì„ ê°„ê³¼í•´ 버리면 온전하다 í•  수 없다.

ì˜ì˜ 마ìŒì„ ì´ë£¨ëŠ” ê²ƒì€ í•˜ë‚˜ë‹˜ 마ìŒì„ ë” ê¹Šì´ ëŠê»´ê°€ê³  행복과 í‰ì•ˆì„ ì´ë¤„가는 과정ì´ë‹¤. ì´ê²ƒì„ 사모하며 ì´ë¤„가고 있는 사람ì´ë¼ë©´ ìžì‹ ì„ 발견해 마ìŒì˜ 비진리를 버려가는 ê³¼ì •ì´ ê¸°ì˜ê³  행복하다. 하지만 ëª©í‘œì˜ ê²°ê³¼ë§Œì„ ì¤‘ìš”ì‹œí•˜ëŠ” ì‚¬ëžŒì€ ë¹„ì§„ë¦¬ë¥¼ 버려 나가는 ê³¼ì •ì´ íž˜ë“¤ê³  고통스럽게만 여겨진다.

진정한 ì‹ ì•™ìƒí™œì€ ì•„ì§ ëª©í‘œë¥¼ ì´ë£¨ì§€ 못해 안타ê¹ê³  힘든 ê²ƒì´ ì•„ë‹ˆë¼, 앞으로 ì´ë£° ì¼ì— 대한 소ë§ìœ¼ë¡œ 기ì˜ê³  행복하게 가는 것ì´ë‹¤. 그래서 ìžì‹ ì´ 매순간 목표를 ì´ë£¨ê¸° 위해 ê³¼ì •ì„ ì–´ë–¤ 마ìŒìœ¼ë¡œ 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ì¼ë¡€ë¡œ, 주어진 환경 ì†ì—서 ìž‘ì€ ê²ƒ 하나ë¼ë„ 실천하고 차근차근 ì‹ ì•™ì˜ ë‹¨ê³„ë¥¼ 밟아가는 것ì´ë‹¤.

ì‚¬ëž‘ì„ ë‹´ì€ ë§ í•œ 마디, ì§¬ì„ ë‚´ì–´ 드리는 기ë„, ë°”ìœ ì¤‘ì—ë„ ì½ëŠ” 성경, ì´ëŸ° ê²ƒë“¤ì´ ì˜ì ìœ¼ë¡œ 쌓여 ê²°êµ­ ë°”ë¼ëŠ” ëª©í‘œì— ë” ë¹¨ë¦¬ 다가갈 수 있다. ì‹ ì•™ìƒí™œì€ 거룩한 ë¯¿ìŒ ìœ„ì— ìžê¸°ë¥¼ 건축하는 것과 같다(유 1:20).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ê³¼ í•˜ë‚˜ë‹˜ì„ ê¸°ì˜ì‹œê²Œ 하는 ë¯¿ìŒ '온 ì˜'ì´ë¼ëŠ” ìµœê³ ì˜ ëª©í‘œê°€ 있다면(계 21:2 ; ì‚´ì „ 5:23) 행복한 ì‹ ì•™ìƒí™œì„ í•  수 있다. 새 예루살렘 성ì´ë¼ëŠ” ëª©í‘œë§Œì„ ì¶”êµ¬í•˜ë ¤ëŠ” ê²ƒì´ ì•„ë‹ˆë¼, ê·¸ 과정ì—서 주어지는 모든 ê²ƒì„ ì†Œì¤‘ížˆ 여기게 ëœë‹¤.

ë§ˆíƒœë³µìŒ 20장 20ì ˆ ì´í•˜ì— 야고보와 ìš”í•œì˜ ì–´ë¨¸ë‹ˆê°€ 예수님께 ë‘ ì•„ë“¤ì„ ì£¼ì˜ ë‚˜ë¼ì—서 ì£¼ì˜ ìš°íŽ¸ê³¼ ì¢ŒíŽ¸ì— ì•‰ê²Œ í•´ 달ë¼ê³  요청하는 ìž¥ë©´ì´ ë‚˜ì˜¨ë‹¤. ì´ì— 예수님께서는 'ë‚˜ì˜ ë§ˆì‹œë ¤ëŠ” ìž”ì„ ë„ˆí¬ê°€ 마실 수 있ëŠëƒ'ê³  물으신다. 당시 ì œìžë“¤ì€ ê·¸ ìž”ì˜ ì˜ë¯¸ë¥¼ 깨닫지 못했고, ê·¸ê²ƒì´ ì–¼ë§ˆë‚˜ ë³µëœ ê¸¸ì¸ì§€ë„ 몰ëžë‹¤. 하지만 ì„±ë ¹ì„ ë°›ê³  난 후ì—는 ê·¸ ì˜ë¯¸ë¥¼ 깨닫고 ì œìžë“¤ ëŒ€ë¶€ë¶„ì´ ì£¼ë‹˜ì˜ ê³ ë‚œì˜ ìž”ì„ í•¨ê»˜ 마시므로 ì˜ê´‘ì˜ ìžë¦¬ì— ì´ë¥¼ 수 있었다(눅 22:28~30).

ìš°ë¦¬ë„ í•˜ë‚˜ë‹˜ ì˜ê´‘ì´ ê°€ë“한 새 예루살렘 ì„±ì„ ì–»ìœ¼ë ¤ë©´ 주어진 ì‚¶ ê°€ìš´ë° í•˜ë‚˜í•˜ë‚˜ ê³µì˜ë¥¼ 쌓아가야 한다. ì´ì™€ ë”불어 확실한 ì†Œë§ ê°€ìš´ë° ëª©í‘œë¥¼ 향해 기ì˜ê³  행복하게 달려갈 때 온 ì˜ì˜ 마ìŒì„ ì´ë¤„ 새 예루살렘 성ì´ë¼ëŠ” ìµœê³ ì˜ ëª©í‘œë¥¼ ì´ë£°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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