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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ë…„ 5ì›” 17ì¼ ê¸ˆìš”ì¼ ì˜¤ì „ 10:5
 
 

ì˜ì¸ì€ 믿ìŒìœ¼ë¡œ 살리ë¼
ÃֽŠ¾÷µ¥ÀÌÆ®
"ê·¸ ì¼ í›„ì— í•˜ë‚˜ë‹˜ì´ ì•„ë¸Œë¼í•¨ì„ 시험하시려고 그를 ë¶€ë¥´ì‹œë˜ â€¦ 네 아들 네 사랑하는 ë…ìž ì´ì‚­ì„ ë°ë¦¬ê³  모리아 땅으로 가서 ë‚´ê°€ 네게 지시하는 í•œ ì‚° 거기서 그를 번제로 ë“œë¦¬ë¼ â€¦
ê·¸ 아들 ì´ì‚­ì„ 결박하여 단 나무 ìœ„ì— ë†“ê³  ì†ì„ 내밀어 ì¹¼ì„ ìž¡ê³  ê·¸ ì•„ë“¤ì„ ìž¡ìœ¼ë ¤ 하ë”니 …
ê·¸ ìˆ˜ì–‘ì„ ê°€ì ¸ë‹¤ê°€ ì•„ë“¤ì„ ëŒ€ì‹ í•˜ì—¬ 번제로 드렸ë”ë¼"(창세기 22:1~13) ...
       
 
  
 

í•˜ë‚˜ë‹˜ì´ ì›í•˜ì‹œëŠ” 사랑_'ì˜ì ì¸ 사랑' 시리즈 1


6825
2019ë…„ 1ì›” 6ì¼ ì¼ìš”ì¼


만민중앙성결êµíšŒ 당회장 ì´ìž¬ë¡ 목사


"ë‚´ê°€ ì‚¬ëžŒì˜ ë°©ì–¸ê³¼ ì²œì‚¬ì˜ ë§ì„ 할지ë¼ë„ … ë˜ ë‚´ ëª¸ì„ ë¶ˆì‚¬ë¥´ê²Œ ë‚´ì–´ 줄지ë¼ë„ ì‚¬ëž‘ì´ ì—†ìœ¼ë©´ 내게 아무 유ìµì´ ì—†ëŠë‹ˆë¼" - 고린ë„ì „ì„œ 13:1~3 -


ì‚¬ëž‘ì€ ì˜ì›ížˆ ë³€í•¨ì´ ì—†ëŠ” ì˜ì ì¸ 사랑과 변질ë˜ëŠ” 육ì ì¸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린ë„ì „ì„œ 13ìž¥ì„ ë³´ë©´ ì˜ì ì¸ ì‚¬ëž‘ì— ëŒ€í•´ 구체ì ìœ¼ë¡œ ì„¤ëª…í•˜ê¸°ì— ì•žì„œ ì´ëŸ¬í•œ ì‚¬ëž‘ì˜ ì¤‘ìš”ì„±ì— ëŒ€í•´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ìŒì— ì˜ì ì¸ ì‚¬ëž‘ì´ ê°€ë“ ì±„ì›Œì§ˆ ë•Œë¼ì•¼ 아버지 í•˜ë‚˜ë‹˜ì„ ë‹®ì€ ì°¸ ìžë…€ê°€ ë  ìˆ˜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ì›í•˜ì‹œëŠ” 사랑 곧 ì˜ì ì¸ ì‚¬ëž‘ì˜ ì¤‘ìš”ì„±ì— ëŒ€í•´ 살펴보겠습니다.


1. ìƒëª…ì„ ì‚´ë¦¬ëŠ” ì‹¤ì† ìžˆëŠ” 사랑

1ì ˆì— "ë‚´ê°€ ì‚¬ëžŒì˜ ë°©ì–¸ê³¼ ì²œì‚¬ì˜ ë§ì„ 할지ë¼ë„ ì‚¬ëž‘ì´ ì—†ìœ¼ë©´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ë˜ê³ " 했습니다. 여기서 'ì‚¬ëžŒì˜ ë°©ì–¸'ì´ëž€ 지구ìƒì—ì„œ ì‚¬ëžŒë“¤ì´ ì‚¬ìš©í•˜ëŠ” 모든 언어를 ì˜ë¯¸í•˜ë©°, 'ì²œì‚¬ì˜ ë§'ì´ëž€ 매우 아름다운 ë§ì„ 뜻하지요. 즉 유창한 ì‚¬ëžŒì˜ ë§ì´ë‚˜ ì²œì‚¬ì˜ ë§ì²˜ëŸ¼ 아름다운 ë§ì´ë¼ë„ ì‚¬ëž‘ì´ ì—†ìœ¼ë©´ 소리 나는 구리와 ì‹œë„러운 꽹과리와 같다는 ë§ì”€ìž…니다.

ë°˜ë©´ì— ì‚¬ëž‘ì´ ë‹´ê¸´ ë§ì€ ìƒëª…ì„ ì‚´ë¦¬ëŠ” 놀ë¼ìš´ ëŠ¥ë ¥ì´ ìžˆìŠµë‹ˆë‹¤. ì˜ˆìˆ˜ë‹˜ì˜ ì‚¶ì—ì„œ ê·¸ ì¦ê±°ë¥¼ ì°¾ì„ ìˆ˜ 있지요.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ì—ì„œ ì‚¬ëžŒë“¤ì„ ê°€ë¥´ì¹˜ì‹œëŠ”ë°, 서기관들과 바리새ì¸ë“¤ì´ ê°„ìŒí•˜ë‹¤ 현장ì—ì„œ 잡혀온 ì—¬ì¸ì„ ëŒê³  옵니다. 그리고는 "모세는 ìœ¨ë²•ì— ì´ëŸ¬í•œ ì—¬ìžë¥¼ ëŒë¡œ ì¹˜ë¼ ëª…í•˜ì˜€ê±°ë‹ˆì™€ ì„ ìƒì€ 어떻게 ë§í•˜ê² ë‚˜ì´ê¹Œ"(ìš” 8:5)ë¼ê³  묻습니다.

ë§Œì¼ ì˜ˆìˆ˜ë‹˜ê»˜ì„œ 율법대로 한다면 í‰ì†Œ "ì›ìˆ˜ë„ 사랑하ë¼"는 ê°€ë¥´ì¹¨ì„ ìŠ¤ìŠ¤ë¡œ 뒤집는 것과 같고, 반대로 "용서하ë¼" 한다면 ìœ¨ë²•ì„ ê±°ìŠ¤ë¥´ëŠ” 명백한 죄가 ë©ë‹ˆë‹¤. ì´ì²˜ëŸ¼ í•¨ì •ì— ë¹ ëœ¨ë¦¬ê³ ìž í•˜ëŠ” ê·¸ë“¤ì˜ ë§ˆìŒì„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무 ë§ ì—†ì´ ëª¸ì„ êµ¬í‘¸ë¦¬ê³  ì†ê°€ë½ìœ¼ë¡œ ë•…ì— ë¬´ì—‡ì¸ê°€ 쓰셨습니다. 그리고는 ì¼ì–´ë‚˜ "ë„ˆí¬ ì¤‘ì— ì£„ 없는 ìžê°€ 먼저 ëŒë¡œ 치ë¼" ë§ì”€í•˜ì‹  후 다시 ëª¸ì„ êµ½í˜€ ì†ê°€ë½ìœ¼ë¡œ ë•…ì— ì“°ì‹œë‹ˆ ì €í¬ê°€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ê²°êµ­ 예수님과 ì—¬ì¸ë§Œ 남았지요(ìš” 8:6~9).

예수님께서는 ìœ¨ë²•ì„ ì–´ê¸°ì§€ 않으면서 ì—¬ì¸ì˜ ìƒëª…ì„ ì‚´ë¦¬ì‹  것입니다. 표면ì ìœ¼ë¡œ 서기관들과 바리새ì¸ë“¤ì˜ ë§ì€ í•˜ë‚˜ë‹˜ì˜ ìœ¨ë²•ì„ ë§í•œ 것ì´ë‹ˆ 잘못ë˜ì§€ 않았지만 ê·¸ ë§ì— 담긴 ì˜ë„나 마ìŒì€ 예수님과 전혀 달ëžìŠµë‹ˆë‹¤. ê·¸ë“¤ì€ ì–´ì°Œí•˜ë“  ìƒëŒ€ë¥¼ 해치려는 마ìŒì´ì—ˆê³ , 예수님께서는 어찌하든 ì˜í˜¼ì„ 살리려는 마ìŒì´ì—ˆì§€ìš”.

우리가 ì´ëŸ° ì˜ˆìˆ˜ë‹˜ì˜ ë§ˆìŒì„ 품는다면 '무슨 ë§ë¡œ ìƒëŒ€ì—게 íž˜ì´ ë ê¹Œ?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ë„하며 ë§ í•œë§ˆë””ë¥¼ 하ë”ë¼ë„ ìƒëŒ€ì—게 ìƒëª…ì„ ì£¼ê³ ìž í•  것입니다. ì–´ë–¤ ì‚¬ëžŒë“¤ì€ í•˜ë‚˜ë‹˜ ë§ì”€ìœ¼ë¡œ 무조건 ìƒëŒ€ë¥¼ 설ë“하려 하거나 지ì í•˜ì—¬ ìžì‹ ì˜ ìƒê°ì— 맞지 ì•Šê³  거슬리는 ë¶€ë¶„ì„ ê³ ì¹˜ë ¤ 합니다. ë¹„ë¡ ê·¸ ë§ì´ ë°± 번 옳다 í•´ë„ ì‚¬ëž‘ì—ì„œ 비롯ë˜ì§€ 않았다면 ìƒëŒ€ë¥¼ 변화시킬 수 없고 ì°¸ ìƒëª…ì„ ì¤„ ìˆ˜ë„ ì—†ìŠµë‹ˆë‹¤. 늘 ìžì‹ ì„ ëŒì•„ë³´ì•„ ë‚˜ì˜ ì˜ì™€ í‹€ ê°€ìš´ë° ë§í•˜ê³  있지 ì•Šì€ì§€, ê·¸ ë§ì´ ìƒëª…ì„ ì‚´ë¦¬ëŠ” 사랑ì—ì„œ ë¹„ë¡¯ëœ ê²ƒì¸ì§€ ì ê²€í•´ì•¼ 하겠습니다.

ìƒëŒ€ë¥¼ 위한 ì˜ì ì¸ ì‚¬ëž‘ì´ ë‹´ê¸´ ë§ í•œë§ˆë””ê°€ 목마른 ì˜í˜¼ì„ ì‹œì›ì¼€ 하고 아파하는 ì˜í˜¼ì—게 기ì¨ê³¼ 위로를 주는 ìƒëª…ì˜ ë¬¼ì´ìš”, 값진 ë³´ì„ì´ ë˜ëŠ” 것입니다.


2. ìžì‹ ì„ í¬ìƒí•˜ëŠ” 행함 있는 사랑

2ì ˆì— "ë‚´ê°€ 예언하는 ëŠ¥ì´ ìžˆì–´ 모든 비밀과 모든 지ì‹ì„ 알고 ë˜ ì‚°ì„ ì˜®ê¸¸ 만한 모든 믿ìŒì´ 있ì„지ë¼ë„ ì‚¬ëž‘ì´ ì—†ìœ¼ë©´ ë‚´ê°€ ì•„ë¬´ê²ƒë„ ì•„ë‹ˆìš”" 했습니다.

여기서 ë§í•˜ëŠ” '예언하는 능'ì´ëž€ 특정ì¸ì—게 주어지는 ì„±ë ¹ì˜ ì€ì‚¬ê°€ 아니ë¼, 예수 그리스ë„를 믿고 진리 ì•ˆì— ë“¤ì–´ì˜¨ 사람ì´ë©´ 장래 ì¼ì„ 알고 ë§í•  수 있ìŒì„ 뜻합니다. ì„±ê²½ì— ê¸°ë¡ëœ 대로 장차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구ì›ë°›ì€ ì‚¬ëžŒì€ íœ´ê±°ë˜ì–´ 7ë…„ í˜¼ì¸ ìž”ì¹˜ì— ë“¤ì–´ê°€ì§€ë§Œ, 그렇지 ì•Šì€ ì‚¬ëžŒì€ ì´ ë•…ì—ì„œ 7ë…„ í™˜ë‚œì„ ê²ªëŠ”ë‹¤ëŠ” ì‚¬ì‹¤ì„ ì•Œê³  있지요. ì´ì²˜ëŸ¼ 장래 ì¼ì„ 알고 예언하는 ëŠ¥ì´ ìžˆë‹¤ í•´ë„ ì˜ì ì¸ ì‚¬ëž‘ì´ ì—†ìœ¼ë©´ ìžê¸° 유ìµì— ë”°ë¼ ë³€ì§ˆë˜ê¸° ë•Œë¬¸ì— ì•„ë¬´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ë˜í•œ '비밀'ì´ëž€ 만세 ì „ì— ê°ì¶”어진 비밀, 곧 'ì‹­ìžê°€ì˜ ë„'를 ë§í•©ë‹ˆë‹¤(ê³ ì „ 1:18). ì¸ë¥˜ë¥¼ 구ì›í•˜ê¸°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는 ì´ë¥¼ 성취하기까지 비밀로 하셨습니다(ê³ ì „ 2:6∼8). ì›ìˆ˜ 마귀 ì‚¬ë‹¨ì€ ì•„ë‹´ì˜ ë²”ì£„ë¡œ ë„˜ê²¨ë°›ì€ ê¶Œì„¸ë¥¼ ì˜ì›ížˆ 가질 줄 알고 ì•…í•œ ì‚¬ëžŒë“¤ì„ ì‚¬ì£¼í•´ ì˜ˆìˆ˜ë‹˜ì„ ì‹­ìžê°€ì— 못 박았지만 죄 없는 ì˜ˆìˆ˜ë‹˜ì„ ì£½ìž„ìœ¼ë¡œì¨ ë„리어 구ì›ì˜ ê¸¸ì´ ì—´ë ¸ì§€ìš”. ì´ì²˜ëŸ¼ ì‹­ìžê°€ì˜ ë„ì— ëŒ€í•œ í¬ê³  놀ë¼ìš´ ë¹„ë°€ì„ ì•ˆë‹¤ í•´ë„ ì˜ì ì¸ ì‚¬ëž‘ì´ ì—†ì–´ 전하지 않는다면 무슨 ì†Œìš©ì´ ìžˆê² ìŠµë‹ˆê¹Œ.

지ì‹ë„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ì‹'ì´ëž€ 학문ì ì¸ ê¹¨ìš°ì¹¨ì´ ì•„ë‹ˆë¼, í•˜ë‚˜ë‹˜ì„ ì•„ëŠ” ì§€ì‹ ê³§ 성경 66ê¶Œì— ë‹´ê¸´ ì§„ë¦¬ì˜ ì§€ì‹ì„ 뜻합니다. 성경 ë§ì”€ì„ 통해 í•˜ë‚˜ë‹˜ì„ ì•Œì•˜ë‹¤ë©´ í•˜ë‚˜ë‹˜ì„ ë§Œë‚˜ê³  ì§ì ‘ 체험하여 마ìŒìœ¼ë¡œ 믿어야 하지요. 머리로만 아는 ë° ê·¸ì¹˜ë©´ 오히려 ê·¸ 지ì‹ì´ ë‚¨ì„ íŒë‹¨í•˜ê³  정죄하는 잣대가 ë˜ëŠ” 등 선하지 ì•Šì€ ëª©ì ìœ¼ë¡œ ì“°ì´ê¸°ë„ 합니다. 그러니 ì˜ì ì¸ ì‚¬ëž‘ì´ ì—†ëŠ” ì§€ì‹ ì—­ì‹œ ì†Œìš©ì´ ì—†ëŠ” 것입니다.

ë˜í•œ 'ì‚°ì„ ì˜®ê¸¸ 만한 모든 믿ìŒ'ì´ëž€ í° ë¯¿ìŒì„ ì˜ë¯¸í•©ë‹ˆë‹¤. 믿ìŒì€ í‘œì ê³¼ 기사 등 í•˜ë‚˜ë‹˜ì˜ ì—­ì‚¬ë¥¼ ë³´ê³  ì²´í—˜í•¨ìœ¼ë¡œì¨ ì„±ìž¥í•  수 있는ë°, 믿ìŒì´ í¬ë‹¤ í•´ì„œ ì‚¬ëž‘ì´ í° ê²ƒì€ ì•„ë‹ˆì§€ìš”. ì˜ì ì¸ ì‚¬ëž‘ì€ ë¬´ì—‡ë³´ë‹¤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í¬ìƒì´ 따를 ë•Œ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ì˜ì ì¸ ì‚¬ëž‘ì´ ì—†ìœ¼ë©´ 예언하는 ëŠ¥ì´ ìžˆì–´ 모든 비밀과 모든 지ì‹ì„ 알고 ì‚°ì„ ì˜®ê¸¸ 만한 모든 믿ìŒì´ 있ì„지ë¼ë„ ì•„ë¬´ê²ƒë„ ì•„ë‹ˆë¼ëŠ” 것입니다.


3. ì²œêµ­ì— ìƒê¸‰ì´ ë˜ëŠ” 사랑

3ì ˆì— "ë‚´ê°€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ë˜ ë‚´ ëª¸ì„ ë¶ˆì‚¬ë¥´ê²Œ ë‚´ì–´ 줄지ë¼ë„ ì‚¬ëž‘ì´ ì—†ìœ¼ë©´ 내게 아무 유ìµì´ ì—†ëŠë‹ˆë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ì—게 ì˜ê´‘ì„ ì–»ìœ¼ë ¤ê³  형ì‹ì ìœ¼ë¡œ 구제하는 ê²ƒì€ í•˜ëŠ˜ì˜ ìƒì´ 없다고 하셨습니다. ë§Œì¼ í•˜ë‚˜ë‹˜ê»˜ì„œ ì´ëŸ° 사람ì—게 ì¶•ë³µì„ ì£¼ì‹ ë‹¤ë©´ ìžì‹ ì„ ì˜ë¡­ë‹¤ ì°©ê°í•˜ì—¬ 마ìŒì˜ 할례를 하지 ì•Šì„ ê²ƒìž…ë‹ˆë‹¤. ì‚¬ëžŒë“¤ì˜ ì¹­ì°¬ì„ ë°›ì„ìˆ˜ë¡ ë§ˆìŒì´ 높아지니 ê²°êµ­ ìžì‹ ì—게 아무 유ìµì´ 없지요. 반면 사랑ì—ì„œ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ìƒê´€ì´ 없습니다. ì€ë°€í•œ ì¤‘ì— ë³´ì‹œëŠ”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ìƒê¸‰ìœ¼ë¡œ ê°šì•„ 주실 ê²ƒì„ ë¯¿ê¸° 때문입니다(마 6:2~4).

구제는 무엇보다 ì˜í˜¼ì„ 살리는 구제가 ë˜ì–´ì•¼ 하고, ì„±ë ¹ì˜ ì£¼ê´€ì„ ë°›ì•„ ìƒëŒ€ì—게 맞게 해야 하지요. ìž˜ëª»ëœ êµ¬ì œëŠ” 오히려 ìƒëŒ€ë¥¼ 하나님ì—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사ë§ì˜ 길로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í•˜ë‚˜ë‹˜ì˜ ëœ» ê°€ìš´ë° ì‚¬ëž‘ìœ¼ë¡œ 구제하면 고넬료처럼 ì˜í˜¼ì´ 잘ë˜ê³  범사가 잘ë˜ëŠ” ì¶•ë³µì„ ë°›ì„ ìˆ˜ 있습니다(í–‰ 10장).

하나님께 드리는 ì˜ˆë¬¼ë„ ë§ˆì°¬ê°€ì§€ìž…ë‹ˆë‹¤. ë§ˆê°€ë³µìŒ 12ìž¥ì— ë‚˜ì˜¤ëŠ” í•œ 과부는 ë¹„ë¡ ë‘ ë ™ëˆì„ 예물로 드렸지만 ìžê¸°ì˜ 모든 소유 곧 ìƒí™œë¹„ 전부를 ë“œë ¸ê¸°ì— ì˜ˆìˆ˜ë‹˜ì˜ ì¹­ì°¬ì„ ë°›ì•˜ìŠµë‹ˆë‹¤. 반대로 ì‚¬ëžŒì„ ì˜ì‹í•˜ê±°ë‚˜ 억지로 드리는 ì˜ˆë¬¼ì€ í•˜ë‚˜ë‹˜ê»˜ì„œ 기ë»í•˜ì‹œì§€ 않으니 ìžì‹ ì—게 유ìµì´ ë˜ì§€ 않습니다.

ì´ëŠ” í¬ìƒë„ 마찬가지입니다. 'ë‚´ ëª¸ì„ ë¶ˆì‚¬ë¥´ê²Œ ë‚´ì–´ 준다'는 ê²ƒì€ ì™„ì „ížˆ í¬ìƒí•˜ëŠ” ê²ƒì„ ì˜ë¯¸í•©ë‹ˆë‹¤. í¬ìƒì€ ì‚¬ëž‘ì„ ì „ì œë¡œ 하지만 사랑 ì—†ì´ë„ 얼마든지 í¬ìƒí•  수 있습니다. ì´ëŸ° ì‚¬ëžŒì€ ì•„ë¬´ë„ ì•Œì•„ì£¼ì§€ 않으면 서운해 하며 ì›ë§í•˜ê³ , 심지어 열심 내지 않는 ì‚¬ëžŒì„ ë³´ë©° íŒë‹¨ 정죄합니다. ì´ ë§ˆìŒì˜ 저변ì—는 ìžì‹ ì˜ 공로를 드러내고 ì¸ì •ë°›ê³ ìž 하는 마ìŒê³¼ ìžì‹ ì€ 충성하고 있다는 높아진 마ìŒì´ 깔려 있습니다. ì´ëŸ° 마ìŒì´ 있으면 불í‰, 불만으로 ìžì‹ ë„ 힘들 ë¿ ì•„ë‹ˆë¼ ì£¼ë³€ 사람과 í™”í‰ì„ 깨며 하나님 마ìŒì„ 아프게 하니 아무 유ìµì´ 없습니다.

설령 드러내 놓고 불í‰í•˜ì§€ 않는다 í•´ë„ ë‚¨ë“¤ì´ ì•Œì•„ì£¼ì§€ 않으면 낙심하고 ì—´ì •ì´ ì‹ì–´ë²„ë¦¬ê¸°ë„ í•©ë‹ˆë‹¤. 누군가 지ì í•˜ë©´ íž˜ì´ ë¹ ì§€ê±°ë‚˜ 지ì í•˜ëŠ” ì‚¬ëžŒì„ ë¹„ë‚œí•˜ê¸°ë„ í•˜ì§€ìš”. ë˜ ìžì‹ ë³´ë‹¤ ì¸ì •ê³¼ ì‚¬ëž‘ì„ ë°›ëŠ” ì‚¬ëžŒì„ ë³´ë©´ 시기 질투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ì¶©ì„±í•´ë„ ì°¸ëœ ê¸°ì¨ì´ 없고, 심지어 사명까지 놓아 ë²„ë¦¬ê¸°ë„ í•˜ëŠ” 것입니다.

윗사람ì´ë‚˜ ë‚¨ë“¤ì´ ë³¼ 때만 열심 내는 ê²½ìš°ë„ ìžˆìŠµë‹ˆë‹¤. 누가 보지 ì•Šì„ ë•Œì—는 ê²Œìœ¼ë¦„ì„ í”¼ìš°ê±°ë‚˜ 대충 시늉만 합니다. ëˆˆì— ë„지 않는 ì¼ë³´ë‹¤ 겉으로 드러나는 ì¼ì„ 하려 하지요. 윗사람ì´ë‚˜ 다른 사람ì—게 칭찬받는 것ì—만 마ìŒ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ì˜ì ì¸ 믿ìŒì´ ìžˆëŠ”ë° ì‚¬ëž‘ 없는 í¬ìƒì´ 나오는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ì˜ì ì¸ ì‚¬ëž‘ì´ ì—†ì–´ì„œìž…ë‹ˆë‹¤. 중심ì—ì„œ 하나님 ê²ƒì´ ë‚´ 것ì´ìš”, ë‚´ ê²ƒì´ í•˜ë‚˜ë‹˜ 것ì´ë¼ 여기는 주ì¸ì˜ì‹ì´ 없기 때문ì´ì§€ìš”.

우리가 ì°¸ëœ í¬ìƒì„ 하려면 무엇보다 ì˜ì ì¸ ì‚¬ëž‘ì„ ì´ë£¨ì–´ì•¼ 합니다. ë§ˆìŒ ì•ˆì— ì‚¬ëž‘ì´ ê°€ë“í•œ ì‚¬ëžŒì€ ëˆ„ê°€ ë³´ë“  보지 않든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묵묵히 헌신합니다. ì˜ˆìˆ˜ë‹˜ì˜ í¬ìƒì„ 통해 ìˆ˜ë§Žì€ ì˜í˜¼ì´ 구ì›ë°›ëŠ” ê²ƒì€ ê·¸ í¬ìƒ ì•ˆì— ì°¸ëœ ì‚¬ëž‘ì´ ìžˆê¸°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í•˜ë‚˜ë‹˜ì„ ì‚¬ëž‘í•˜ì‹¬ìœ¼ë¡œ ìƒëª…ì´ ë‹¤í•˜ê¸°ê¹Œì§€ í•˜ë‚˜ë‹˜ì˜ ëœ»ì„ ì´ë£¨ì…¨ìŠµë‹ˆë‹¤. ì‹­ìžê°€ì— 달리신 ê·¸ 순간ì—ë„ ì˜í˜¼ë“¤ì„ 위해 중보기ë„를 올리셨지요(눅 23:34). ì´ëŸ° ì°¸ëœ í¬ìƒì´ 있었기 ê¹Œë‹­ì— í•˜ë‚˜ë‹˜ê»˜ì„œ 친히 높여 주시고 천국ì—ì„œ 가장 ì˜í™”로운 ìžë¦¬ì— ì´ë¥´ê²Œ 하신 것입니다(빌 2:9∼11).

사랑하는 ì„±ë„ ì—¬ëŸ¬ë¶„,
아무리 ì˜ì‹ì£¼ 문제가 í•´ê²°ë˜ê³  모든 ê²ƒì´ í’족하다 í•´ë„ ì‚¬ëž‘ì´ ì—†ìœ¼ë©´ ì‚¶ì˜ í¬ë§ë„, ì‚´ì•„ê°ˆ ì˜ìš•ë„ 사ë¼ì§‘니다. ì´ì²˜ëŸ¼ ì‚¬ëž‘ì€ ì‚¶ì— ìžˆì–´ì„œ 가장 중요한 ìš”ì†Œë¼ í•´ë„ ê³¼ì–¸ì´ ì•„ë‹™ë‹ˆë‹¤. 하물며 ê·¸ ì‚¬ëž‘ì´ ë³€í•¨ì—†ëŠ” 사랑, ì˜ì ì¸ 사랑ì´ë¼ë©´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ì›í•˜ì‹œëŠ” ì˜ì ì¸ ì‚¬ëž‘ì„ ì´ë£¨ì–´ ì˜ì›ížˆ í•˜ë‚˜ë‹˜ì˜ ê¸°ì¨ê³¼ ì˜ê´‘ì¤‘ì— ê±°í•˜ì‹œê¸°ë¥¼ ì£¼ë‹˜ì˜ ì´ë¦„으로 축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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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역 - 하나님과 ë™í–‰í•œ 믿ìŒì˜ 역사 ì´ìž¬ë¡ ëª©ì‚¬ì˜ ì‚¶ê³¼ 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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