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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범죄치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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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사무엘상 19:4)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부도 위기에 있던 아버지 회사가 크게 회생했다면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친구에게 심한 해를 끼친다면 너무나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가 너무 악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해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며 끝까지 선으로 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아버지가 범죄하지 않도록 막으며 간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 영적인 사랑으로 아버지의 범죄를 막은 요나단

사울 왕의 장남인 요나단은 왕위를 이을 왕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용사요 넉넉한 인품을 가진 리더로서 백성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았지요.

어느 날, 요나단 앞에 다윗이 혜성같이 나타납니다. 그는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죽이고 어려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요나단은 다윗을 본 순간 하나님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의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사울 왕은 혁혁한 공을 세운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습니다. 다윗은 출전한 전쟁마다 큰 승리를 거둠으로 영웅으로서 입지를 더욱 굳혀 갔지요. 그런데 사울 왕이 격분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오는데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노래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울 왕은 다윗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윗이 바라볼 것은 나의 옥좌가 아니겠는가?' 하며 수금을 타는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지요. 이러한 사울의 무서운 적개심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한 사람은 바로 아들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울 왕에게 제발 다윗에게 자비롭게 대해 주기를 탄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사무엘상 19:4~5에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하며 간청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나단의 입장이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권력은 부자간이나 형제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요나단에게 다윗만 없으면 다음 왕권은 자연히 자신의 차지가 됩니다. 반면 다윗이 왕이 되면 자신의 가문이 몰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육적인 정에 치우치거나 악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었고, 아버지 사울 왕이 범죄해 멸망으로 가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사울 왕에게 단호히 죄를 짓지 말라고 영적인 사랑으로 간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끝까지 선으로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한 요나단

사울 왕은 다윗의 명성이 더욱 높아져 가자 공식석상에서 다윗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요나단은 일단 다윗을 피신시키고 사울 왕 앞에 나아가 다윗을 구명하기 위해 탄원합니다. 사무엘상 20장을 보면 월삭 축제 둘째 날이 됐는데도 다윗이 식사 자리에 안 보이자 사울 왕이 궁금해 묻습니다. 이때 요나단은 사울 왕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다윗이 베들레헴에 가서 형들과 함께 제사 드리기를 원해서 가도록 허락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지요. 만약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자마자 사울 왕은 노를 발하며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삼상 20:30~31)

요나단은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하며 다윗의 무죄함을 변호했지요.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은 얼마나 화가 치밀었던지 단창으로 아들마저 치려 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다윗을 향한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고는 너무 슬퍼 울었습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끝까지 지키며 사울 왕이 돌이키도록 사랑으로 권면했습니다. 요나단의 선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단지 아버지의 범죄를 막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하며 더 깊은 차원의 선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누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 몹시 마음 아파합니다. 더구나 악한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더욱 큰 고통을 받지요.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 왕을 버리신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악인과 함께하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까지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함께 전사할 때까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3. 진정한 선은 범죄를 막고 진리로 이끄는 것

성경이나 역사를 통해 보면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가족 전체가 고통을 받고 나아가 이웃까지 피해를 입는 것을 봅니다. 또한 몇몇 사람의 범죄로 백성 전체가 고통받기도 하고, 그룹의 리더가 범죄하면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하지요.

죄는 이처럼 개인은 물론 주변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적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마음 상하게 하거나 화평을 깰까 염려돼 말을 못합니다. 이는 사랑도, 선도 아닙니다. 육적인 정에 불과하지요. 사무엘상 2장 12절 이하를 보면 엘리 제사장이 그랬습니다.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했는데도 타이르기만 할 뿐 체벌도 가하지 않았지요. 끝내 아들들은 돌이키지 않았고 이로 인해 두 아들은 물론 엘리 제사장도 죽고 가문에 재앙이 임하고 맙니다. 진정한 선은 범죄를 막고 권면해 주며 진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은 가족 중에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한다든가,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말을 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엇이 선이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리고 온전한 선은 어떠한 것인지 잘 알기에 사랑으로 진리의 말만 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러한 선 속에서 가족을 사랑했기에 범사에 하나님 말씀만 행하도록 이끌며 생활 속에서 조그마한 죄라도 짓지 않도록 막아주었지요. 이에 가족 전체가 더욱 진리로 변화돼 큰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단은 영적인 사랑으로 충만했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범죄했을지라도 끝까지 선으로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요나단과 같이 어떤 악한 자라 할지라도 끝까지 사랑으로 보듬어 주되 단호히 죄를 지적해 진리로 이끌어 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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