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6~18)
오늘날 자신의 유익을 구하며 조건부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상대 유익을 구하고 희생하기보다는 상대가 무엇을 해 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주겠다는 식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에도 이런 조건이 붙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며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유익을 따라 조건부로 사랑합니다. 그러니 어찌 '사랑한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선'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기뻐하시는 선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남유다 왕국을 침공했을 때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으로 신앙을 지킨 다니엘의 세 친구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된 신상을 만들어 놓고, 낙성예식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의 모든 관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신상에 절을 하라고 했지요. 만일 절하지 않는 사람은 즉시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단 3:1~7).
그런데 관원들 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와 관직에 오른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위기에서도 우상 앞에 결코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고백합니다(단 3:17~18).
설령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건져주시지 않을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지 않아도 그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온전한 신뢰가 있었지요.
설령 목숨을 잃을지라도 오직 감사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자 심히 분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 불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단 3:19~23).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섭게 타오르는 불 속에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 나온 것입니다. 이를 지켜 본 왕은 너무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다니엘의 세 친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단 3:28~30).
이처럼 아무 잘못 없이 시험이 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을 줄 아셨기에 시험을 허락하심으로 더욱 크게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 생명을 달라 하셔도 기꺼이 줄 수 있는 신앙
혹여 응답받을 문제가 있는데, 정작 자신의 할 바는 하지 않으면서 요행만 바라지는 않았는지요?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먼저 주저앉아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조건을 내걸고 "응답해 주시면 제가 신앙생활 더 잘하겠습니다" 합니다. 가령 사업이 어려우면 "회사만 잘되면 더 많이 하나님께 예물을 심고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지요. 이 사람은 먼저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로, 물질로, 예배로 심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때가 돼 거둘 수 있지요.
질병으로 고통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내 병 낫게 해 주시면 그때는 봉사도 열심히 하고 충성할게요" 하지만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지 못합니다. 왜 병이 왔는지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라도 해서 죄를 발견하게 하시고 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사랑에 감사가 나와야 하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조건부적 신앙이 아니라 목숨을 달라 하셔도 기꺼이 줄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무엇을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 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소유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하시니 죽음도 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과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설령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 해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죽는 날까지 어떤 고난 앞에서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습니다(행 20:24).
사도행전 21장에도 보면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 하신 성령님의 말씀을 전하자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지요. 결코 목숨이 두려워 믿음이 흔들리거나 타협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 앞에 조건 없는 신앙으로 오직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권면합니다(살전 5:16~18). 현실을 보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쫓겨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힘들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에는 주님을 믿는 자를 핍박한 자가 이제는 핍박받는 자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지요. 또한 어찌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 주님 피 값을 찾아드릴까 힘쓸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실적으로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 얼마나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셨는지요? 믿음의 본을 보여 준 다니엘의 세 친구나 사도 바울처럼 꼭 승리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