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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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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9일 일요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


시기 질투는 신앙생활에 무서운 암적 요소입니다. 이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느끼지 않지만 가까운 사이나 경쟁관계에서는 잘 나타나지요. 가령,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어떤 회사원이 출세해 인정받는다고 시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근처에 동일 업종의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잘되면 싫고 불안해지지요.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지면 투기로 나옵니다. 자랑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다툼을 일으키고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1.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 남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시기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자신보다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같이 입사한 동료는 고속 승진을 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말단이니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힘이 빠지고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지요. 이렇게 시기 질투가 있으면 낙심이 됩니다.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만 깊어지지요.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의 기쁨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잘되니 낙심이 되고 힘이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곧 '자기(自己)'가 살아 있다는 뜻이지요. 상대보다 더 사랑과 인정받고 싶은 자아가 살아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시기심이 생깁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지면 악한 말과 상대를 해하는 악한 행동까지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투기입니다. 투기는 악하고 추한 마음의 죄성이 겉으로 드러난 현저한 육체의 일이기 때문에 구원받기 어렵습니다(갈 5:19∼21).

그 예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다윗을 투기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에게서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3미터 가까운 장신(長身)에 청동갑옷으로 무장한 블레셋 최고의 전사 골리앗이 40일 동안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지요. 그런데도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좌불안석 떨고만 있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다윗이 하나님을 모욕한 적장을 물맷돌로 단번에 쓰러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승리를 거두고 다윗은 일약 국가적 영웅이 돼 백성의 사랑을 받지요.

사울 왕은 뒷날 다윗을 군대 장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시기 질투를 자극하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어느 날 수많은 백성이 나와 대환영을 하지요. 이때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하며 노래를 합니다. 이에 사울은 분개하지요.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며 그날부터 다윗을 주목합니다(삼상 18:8~9). 그리고 악신으로 고통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하는가 하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도록 음모를 꾸미고 최고의 무사들을 시켜 살해하려고 하지요. 집요한 사울 왕의 투기는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고 나서야 그쳤습니다.

욥기 4:8에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말씀했고, 잠언 14:30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자신이 행한 악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악을 뿌린 대가로 병을 얻거나 가정과 일터에 재앙을 당하기도 하지요. 시기, 질투, 투기는 백해무익하며 영으로 들어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에 온전히 우리 마음에서 뽑아내야 합니다.


2.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자신이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잘한 것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합니다. 상대가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지기 때문에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하지요. 그러니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정반대이지요.

요한일서 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이생의 자랑'이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려는 속성을 말합니다. 육의 사람들은 가문이나 명예, 권세, 고급승용차, 집이나 보석 등을 자랑합니다. 권세자나 유명인과 친분이 있으면 으쓱해지고 자랑스러워하지요. 이들은 인생의 가치를 이땅에 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자랑한들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전 1:2~3), 인생은 일순간에 피었다 지고마는 들꽃처럼 쉬이 지나갑니다(시 103:15). 이 세상의 자랑은 참된 가치와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망의 길로 갈 뿐입니다.


3. 주 안에서 자랑하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비진리를 벗어 버리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나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를 취하고자 하는 정욕도 없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31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말씀했습니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자랑하라는 것이지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응답받은 간증을 자랑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육 간에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었다."며 자신을 드러내지요. 결국에는 자신의 공로로 돌리니 사단의 송사를 받아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자랑거리는 영원한 생명과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헛된 욕심을 불러일으켜 멸망으로 인도할 뿐이지요. 하지만 우리 안에 천국 소망을 채워 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마치 어렸을 때는 그렇게 좋았던 장난감이 어른이 되면 시시해지는 것처럼,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가면 육적인 자랑이나 세상적인 것은 너무나 보잘것없어지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고백한 것처럼,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며 자랑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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