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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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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영적인 사랑 시리즈]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13051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 한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의 15가지 속성 중 다섯 번째는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악 중에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1. 교만한 사람의 특징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기니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보통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상대에게 나타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윗사람까지도 무시하지요.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곧잘 변론으로 이어져 다툼이 생깁니다. 심하면 서로 자신이 옳다고 혈기를 내며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합니다. 잠언 13:10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했으며, 디모데후서 2:23에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이 다르고 지식도 다릅니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체험한 것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식 중에는 오류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지면 자신만의 '의'와 '틀'이 형성됩니다.

'의'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굳어지면서 '틀'이 되는 것입니다. 성격이 틀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의 틀이 되기도 합니다. '틀'은 마치 단단한 골격과 같아서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 뿐 아니라 일단 형성되면 깨지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대개 의와 틀에서 나옵니다.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은 부자가 옷깃만 여며도 '옷 자랑한다.' 생각하고 누가 어려운 문자만 써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낍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는 선생님에게서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연합성회 인도차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저의 지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뉴욕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 중에는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주장하다가 변론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의 확신이 있다 해도 만에 하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그만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요. 설령 어린아이라 해도 그 마음을 배려합니다. 모든 영혼은 예수님 피 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로서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육적인 교만과 영적인 교만

대체로 눈에 띄게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교만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육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를 알면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버려집니다. 반면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교만이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말씀을 들어 많이 압니다. 직분과 사명을 받아 위치가 높아지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아는 말씀을 마음에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또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꼭 지켜야 할 절차를 자신의 유익을 좇아 무시하기도 합니다. 명백히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인데도 '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라고 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이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마음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지요.

사람은 누구나 성결하기 전에는 교만해질 수 있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죄성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같은 기도로 온전히 뽑아 버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시 교만한 모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잡초를 잘라내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을 틔우는 것과 같습니다. 즉 죄성을 마음에서 온전히 뽑아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다시 교만이 틈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며,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고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변함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3. 자신을 믿고 사는 교만한 사람들

느부갓네살 왕은 대제국 바벨론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사람입니다. 고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 정원'도 그의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과 업적을 오직 스스로 이뤘다고 자랑하며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게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그에게 세상 주관자가 누구인지 깨우쳐 주십니다(단 4:30~32).

결국 그는 왕궁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광야에서 7년 동안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을 합니다. 7년 후 정신이 돌아온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인정하지요(단 4:33~37).

비단 느부갓네살 왕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나 자신을 믿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태풍,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나 신종 질환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과 세상을 더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돕기 원하시지만 사람 편에서 교만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간섭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에서 보호받을 수도, 형통하게 인도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어리석다' 하십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은 모두 미미한 존재일 뿐입니다. 설령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 해도 이 세상은 잠시잠깐일 뿐이며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결국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고 섬긴 만큼 천국에서 높은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4:10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신 대로 주님께서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춰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큰 자, 존귀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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