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인사법이나 대화법 등 나라나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무례히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지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허물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자칫 예의 없는 행동과무례한 말로 피해를 주기 쉽습니다.
진정 사랑이 있다면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값비싼 보석이 있다면 아무렇게나 취급하겠습니까? 행여 잃어버릴세라 흠집이 날세라 조심조심 다루겠지요. 하물며 진정 상대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소중히 대하겠습니까?
1.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는 경우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정작 그 언행을 보면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배 시간에 조는 모습입니다. 대통령이나 상사 앞에서 조는 것도 무례한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존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진실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 시간에 옆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지요. 이는 설교자에게도 무례한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옆 사람과 대화하거나 잡념과 졸음에 빠져 있다면 설교자는 혹여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나?' 염려해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예배 도중에 나가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예배를 돕는 사명 때문에 나가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도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마칠 때까지 모든 순서를 마음 다해 드려야 하지요. 찬양이나 기도 시간은 물론 헌금이나 광고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적인 예배 외에 찬양예배, 구역예배 등을 드릴 때에도 항상 동일한 마음으로 정성껏 드려야 하지요.
이처럼 정성껏 예배를 드리려면 무엇보다 지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시간에 늦는 것도 큰 실례가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늦는다면 얼마나 무례한 일이겠습니까?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 밖에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예배드리는 것,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 떠들고 장난하는 자녀들을 방치하는 것, 예배 시간에 껌을 씹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예배에 나올 때 몸가짐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입던 옷 그대로 아무렇게나 하고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수요예배나 금요철야예배 때 일을 마치고 서둘러 오느라 작업복 차림으로 왔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경우에는 무례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바쁜 일과 중에도 어찌하든 예배에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을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이 외에도 다급하다고 기도하는 사람을 툭툭 쳐서 기도를 중단시키거나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그 즉시 기도를 멈추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무례함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반면에 번번이 무례를 범한다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생겨 질병, 사고 등 갖가지 문제를 만나거나 오랫동안 기도해도 응답받기 어렵습니다.
2. 성전에서 무례히 행하는 경우
성전이란 예배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 속한 마당과 부속 시설 등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전 어디에서든지 말과 행동을 주의해야 합니다. 큰소리로 다투거나 사업이나 오락 등 세상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되지요. 또 성물을 훼손시키거나 낭비해서도 안 되며, 헌금봉투를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더욱이 성전 안에서의 매매 행위는 엄격히 금해야 합니다. 성전 부속 사무실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고 물건을 받으면서도 매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명백한 매매입니다. 성전 뜰에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짐승을 팔고 환전하는 상인들의 상을 엎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마 21:12~13). 제사에 쓰일 제물이라도 용납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개인의 필요를 따라 매매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바자회를 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구별된 장소입니다. 성전의 거룩함에 대해 자칫 무감각해져서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3. 사람에게 무례히 행하는 경우
상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면 무례함이 나옵니다. 사소하지만 전화를 할 때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밤늦게 전화한다거나 바쁜 사람에게 전화해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또 약속시간에 늦는 것, 남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가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간혹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데 그처럼 일일이 따지는 것은 오히려 정감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도 있겠지만 사람 마음을 백 퍼센트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은 친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늘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사이라 해서 함부로 말을 해 상처를 주는 일도 많습니다.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에게 무례히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지요. 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 해서 무례히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게 반말을 하기도 하고, 무시하고 명령하는 태도로 불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부모나 스승 등 마땅히 섬겨야 할 대상에게도 중심에서 섬기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혹자는 세대가 변해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레위기 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뜻은 사람 사이에도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세상의 법과 질서도 잘 지켜서 무례히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식사하거나 일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배움과 지식이 다르고 나라와 민족마다 문화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 삼아 예를 지켜야 할까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의 법'이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법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해 나가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양을 갖춰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랑의 법에 담긴 또 한 가지의 의미는 바로 '배려'입니다. 배려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을 대하듯 예를 다해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