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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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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영적인 사랑 시리즈]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13260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간혹 상대가 피해를 주거나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곧잘 노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여움을 겉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성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마음을 어둡게 하니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도 더딜 수밖에 없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 자녀들이 성냄으로써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이들이 하나님 자녀에게 놓는 대표적인 덫이 바로 미움과 성냄입니다.

우리가 성내지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을 소유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의분과 성냄의 차이

성내는 것은 격렬히 화를 내거나 큰소리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얼굴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는 것, 말투가 퉁명스러워지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성내는 것이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에 있는 미움, 불편함이 표출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표정만으로 '화가 났구나.'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상대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지요.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십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은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지요.

평소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이 광경을 보고 돌변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지요.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혈기가 대단하시네? 화를 내신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는 공의로 사랑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한 편 손 마른 사람을 만납니다. 마침 안식일이라 악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정을 엿봅니다. 만일 환자를 고치면 안식일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송사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묻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 3:4) 그러자 아무 말도 못하지요.

선만 행하시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려 하는 이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든 그들이 깨우쳐 죄에서 돌이키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며 의분을 내신 것은 영혼들을 깨우고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사랑에서 비롯됐습니다.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그만큼 성결해 죄가 없을 때 의분이나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2. 사람들이 성내는 이유

사람들이 성내는 이유는 첫째로 상대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을 때입니다. 저마다 성장한 환경이나 배움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다르지요. 교양이나 판단 기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니 감정이 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사람들이 성내는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앞서거나 나은 위치에 있으면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요. 물론 윗사람을 존중해 주고 질서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순종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에 따르기를 바라서는 안 되지요.

이 외에도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욕설을 듣거나 모욕을 당했을 때 쉽게 화를 냅니다.

성낼 때 보면 먼저 마음에서 나쁜 감정이 일어납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감정을 자극하고 성내는 행동으로 나오지요. 흔히 '감정이 상한다'는 단계가 바로 성냄의 전초 단계입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악한 감정이 있는 이상 진리로 변화될 수도 없지요.


3. 성내는 사람의 결과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 권능을 나타낸 선지자입니다. 자녀가 없는 여인에게 잉태의 축복을 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문둥병을 고치고 기도로 적군을 물리치는 등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냈지요. 그런데도 그는 선지자로서는 드물게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엘리사를 둘러싸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왕하 2:23)라고 조롱했지요. 그가 머리숱이 적고 외모가 볼품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좋은 말로 타일러도 보았지만 아이들은 더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더 이상 견디다 못한 엘리사는 그만 저주하고 맙니다. 그러자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뛰쳐나와 순식간에 42명의 아이들을 물어 죽였지요.

이 사건은 비록 아이들의 심한 조롱에서 기인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에도 감정이라는 악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병들어 죽은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지요. 바로 하나님 자녀로서 성내는 것이 합당치 않음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20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4. 성내지 않으려면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력이 생겨 손을 떼는 순간 튕겨져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화를 눌러 참으면 순간의 위기는 모면해도 언젠가는 폭발하게 마련이지요. 성내지 않으려면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마음을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물론 하루아침에 감정을 버리고 선과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화가 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고 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화가 날 때에는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 찬찬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순간 참지 못해 후회할 일이나 부끄럼 당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내하다 보면 성내게 하는 감정까지 차츰 버려집니다. 예전에는 열 번 화내던 것이 아홉 번, 여덟 번으로 점점 줄어들지요. 나중에는 아무리 화가 날 상황이 돼도 마음이 평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교회에서는 화나는 일이 있어도 잘 참다가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는 곧잘 화를 내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성전 삼고 계셔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감찰하시지요. 항상 거룩한 말과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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