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7~18)
당회장 이재록 목사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유다)과 북(이스라엘)으로 분열됩니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심히 노엽게 하지요.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남유다도 세 차례나 바벨론 제국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 왕국을 1차 침략했을 때의 일입니다. 지도층 일부가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면 다니엘 세 친구의 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
바벨론 왕은 융화정책의 일환으로,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 왕족과 귀족 중에 모든 재주를 통달하고 지식 있는 소년들을 데려다가 그 나라 학문과 방언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발탁돼 3년간 왕궁에서 왕이 내려 주는 음식을 먹어야 했지요. 포로 신분으로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우려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긴 짐승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감독관에게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 채식만 할 수 있도록 조건부 허락을 받았습니다. 일단 10일 동안 채식한 후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었지요. 과연 그들은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해졌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게 됐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다니엘 1:17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셨지요. 그 결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됐고 왕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다니엘 1:20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더 뛰어나게 높여 주셨지요. 만일 여러분이라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포로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겠는지요? 포로 신세로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데다 왕이 지정한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마음은 세월이 흐르고 지위가 높아져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온통 이방 문화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곧 세상적이고 향락적이며 우상 숭배가 만연했지요. 그럼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곧은 중심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는 순결한 자들이었습니다. 다니엘 세 친구가 포로의 신분임에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한 중심의 선을 본받아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의 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마음
어느 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바벨론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엄포를 놓지요. 그러나 세 친구는 생명의 위협에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왕은 노하며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줄 테니 금 신상 앞에 절을 하라고 하지요. 또한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회유와 협박으로 세 사람의 의지를 꺾어 보려고 합니다. 이에 다니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즉 풀무 불에 던져져서 불에 타 죽는다 해도 우상 앞에 결단코 절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지요.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담대히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는 왕에게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을 잃을지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더 높게 살 수 있는 선한 고백이 나옵니다.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 불 가운데서 건져 주시지 않을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참으로 비장한 믿음의 고백을 했지요.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한 고백이 아닙니다. 능히 건져 주실 하나님을 믿으나 그리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을 깊은 선 가운데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온전한 신뢰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하나님 뜻 가운데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행할 바를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께서도 이만큼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도리를 다했음에도 오히려 시험이 왔고, 목숨을 잃을 상황이라 해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지요.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주관해서 충분히 세 사람을 건져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풀무 불에 던져지도록 내버려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 사람이 변함없는 믿음의 증거를 선 가운데 보일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연단이 온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고 심은 것에 족하게 여기며 변함없이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