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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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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선 시리즈 8 - 나아만의 선


13681
2013년 3월 31일 일요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누가복음 4:27)



당회장 이재록 목사



나아만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나라 곧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서 문둥병에 걸려 있었습니다(왕하 5:1). 불치병이기에 아무리 좋은 약과 최고 의술, 자신이 섬기는 신을 의존해 보아도 치료를 받지 못했지요.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하나님 권능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무리 큰 권능을 행하는 선지자가 있고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 해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마음이 선해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이라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27에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말씀합니다. 나아만 장군의 행함을 보면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나아만 장군의 선은 무엇일까요?


1. 복되고 선한 소식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

나아만 장군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계집종이 주모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말하지요.

결국 이 말이 나아만 귀에도 들리게 됐고 나아만은 계집종의 말을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왕 다음가는 권세를 지닌 지체 높은 신분이지만 하찮은 종의 말도 흘려듣지 않을 만큼 마음이 겸손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말은 선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이었지요. 이처럼 복되고 선한 소식을 들을 때에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십니다. 만일 나아만의 마음이 강퍅했다면 "네가 무엇을 안다고 참견이냐!" 하며 계집종의 말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라고 전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선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전도자의 말을 듣고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더욱이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떻게든 세상에 의지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전도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의 증거를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는 마음

나아만은 계집종이 알려 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 종들을 시켜 "모셔 오라." 하거나 서신을 띄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지자를 찾아 나섰지요.

또한 열왕기하 5:5에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치료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처럼 정성된 마음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심지 않고 거두길 바라거나 심은 것 이상을 바라는 요행이 아니라 정녕 응답받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해 갔지요.

이처럼 나아만은 병든 몸을 이끌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해 직접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다만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기분이 상해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하지요.

단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니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직은 자기적인 생각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나아만의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말하지요(왕하 5:13). 종들이 나아만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권면의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 그가 얼마나 선하고 겸비한 사람이었는지를 알려 줍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들을 줄 알았으며 옳고 좋은 건의라면 받아들이는 넓고 큰마음을 지녔습니다. 그러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종들이 나아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할 수 있었지요. 결국 나아만은 마음을 돌이켜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었습니다.

영적으로 '일곱'은 '완전함'을 뜻하는 완전수이며 요단강의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하므로 '일곱 번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만은 세 번, 네 번 씻어도 낫지 않자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만 것이 아니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일곱 번을 씻었고 그 결과 문둥병을 치료받는 하나님 역사를 보았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되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즉시로 문둥병을 고쳐 주셨습니다(왕하 5:14). 즉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으로 여기며 선하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대하 20:20).


3.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갚을 줄 아는 변함없는 중심

누가복음 17: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 사람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는데 단 한 사람만 와서 사례하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질병을 치료받기 원하거나,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고자 할 때는 "치료받으면 생명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응답해 주시면 어떻게 하겠습니다." 하고 고백하지만 막상 치료받은 후에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열왕기하 5:15에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했습니다.

치료받은 후에 그냥 자신의 나라로 떠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함께 온 사람들을 모두 거느리고 다시 엘리사 앞에 나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즉시 하나님만 인정하고 섬기겠다는 다짐을 했지요(왕하 5:17).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한 번 만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선한 중심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나아만을 택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이 여러분의 마음에 얼마나 임했느냐에 따라 축복의 크기와 응답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선한 마음을 갖되 행함으로 온전케 이뤄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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