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 9:1~3)
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도 바울은 원래 자기 의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의식도 컸지요. 또 끊임없이 탐구하며 매사에 철저히 대비하는 성품이었습니다. 답을 낼 때까지 집요하게 궁구하며 고민했고, 이로 인해 '자아'가 단단하게 형성됐습니다. 한편으로는 호탕한 성격도 있었지만 늘 계산이 앞서고 생각이 앞섰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것이 참이 아님을 깨닫자 육의 것은 단번에 버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쌓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더욱이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진하게 하나님께 올려졌지요. 그러니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권능을 베풀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세계 선교의 기반을 마련해 이방인의 사도가 됐지요. 그러면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요,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할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그는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에도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하며 애통했습니다(빌 3:18).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에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지요.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1~3을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한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심지어 유대인 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행 23:12~13). 그런데도 바울은 설령 자신은 구원받지 못한다 해도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지요. 이처럼 바울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뤘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 말하고 있지요. 영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승한지를 말해 줍니다.
2.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마음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가 하면 독사에 물려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났지요(행 19:11~12). 이처럼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지 않았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겸손히 고백하지요.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통해 성결을 이뤘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셨지요.
결국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한 사모함이 더해졌으며, 영의 깊은 계시를 받아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았습니다.
그는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했다가 은혜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줬습니다.
3. 자신을 들레지 않는 마음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한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자신에게 적용하지요.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고 자신을 들레지 않습니다. 또 깊고 비밀한 영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사랑을 받아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지요. 좋은 말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혹여 실족당할 사람이 있을까 해 절제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5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한 것입니다. 천국을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하되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령님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자신이 기도해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안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로 된 것임을 중심에서 인정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중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 영광은 더 커져 갔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크게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최고의 선을 이뤄 마지막 때 영광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