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후 2:2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최신 업데이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선 시리즈 15 - 엘리야의 선 (1)


13572
2013년 5월 19일 일요일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열왕기하 2:11)



당회장 이재록 목사



엘리야는 B.C. 9세기경 우상숭배가 만연한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에 담대히 하나님 뜻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방신을 섬기는 850인과 대결해 믿음으로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렸고, 간절한 기도로써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이 외에도 사르밧 과부로부터 떡 한 조각을 공궤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주었으며,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리기도 했지요. 또한 요단강을 가르기도 하고 앞일에 대해 밝히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보지 않은 채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지요.

과연 엘리야 선지자는 어떠한 선의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을까요?


1. 자신을 겸비하게 낮추며 모든 사람과 화평하는 마음

엘리야는 원래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히 겸비한 마음을 가졌기에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고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됐지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러한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 사도 바울은 변화되기 전 육적으로 매우 담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일꾼으로 쓰임 받기까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는 연단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연단을 통해 마음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본래 성품이 심히도 유약하고 자존심이나 들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도 '나는 부족한데 어찌 하나님 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나님 일을 어그러뜨리면 안 되는데….'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유약함이 영으로 변화돼야 큰 선지자로 쓰임 받을 수 있기에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엘리야가 활동했던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라 할 수 있는 아합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의 아버지 오므리는 군사적, 상업적 동맹을 유지하고자 바알을 섬기는 이방나라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아들 아합과 정략 결혼을 시키지요. 그런데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이 북이스라엘에 퍼져 온 나라가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가 컸던지 심판이 임하지요. 바로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합 왕에게 전달하라고 엘리야에게 첫 번째 사명을 주십니다. 아합 왕은 그 말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하지요. 가뭄이 시작된 지 3년 반쯤 됐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비를 내릴 것이니 아합 왕을 다시 만나라고 하십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에 임한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잡히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음이 유약한 엘리야가 이러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 명령대로 아합 왕 앞에 나아갔고 하나님 뜻을 분명히 전달합니다. 나아가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위해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달라고 아합 왕에게 제안까지 하지요(왕상 18:19).


2.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끈을 놓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

엘리야가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늘 교통하기를 힘썼고, 하나님 뜻을 정확히 깨닫고자 했지요. 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겸비한 마음으로 늘 하나님 앞에 구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 능력을 받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를 통해 엘리야는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과 능력, 그리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 권능을 더욱 사모하게 됐고, 또한 '사람의 생각으로 바라볼 때는 되지 않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면 능히 된다'는 믿음이 확고해졌지요. 그렇다고 단번에 유약함이 벗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단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으니 결국은 하나님 능력으로 강함이 입혀졌지요.

연단을 받은 후 엘리야는 믿음 안에서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큰 권능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육의 한계 속에 있는 자신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하나님 뜻에 순종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들을 육의 공간에서도 나타내실 수 있었습니다(왕상 18:46).

아버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적으로 능력이 많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을 전하고 그분의 능력을 그대로 나타낼 사람을 쓰시지요.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그릇이라 할 때 그릇 안에 '자기'가 많이 담겨 있으면 하나님 능력을 많이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 주신다 해도 그릇 안에 담긴 '자기'와 섞여서 순수한 하나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릇은 '자기'가 온전히 비워진 깨끗한 그릇, 마음이 겸비한 그릇입니다. 자기가 온전히 비워진 깨끗한 그릇이라 해도 바닥이 깊은 그릇이 많이 담기듯 자신의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면 낮출수록 하나님 능력이 더 많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중심에서 고백했고 항상 하나님과 교통의 끈을 놓지 않았지요. 또한 성령이 마음에 임하지 않은 구약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았음에도 서로 부딪치고 불편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의 보혈로 용서하고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는 진리 말씀으로 죄와 의에 대해서 밝히 분별하되 하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죄인들을 섬기신 예수님처럼 설령 나 보기에 의롭지 못한 상대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참된 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마음 자세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를 택하사 보배를 담는 그릇이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겸비하게 자신을 낮춤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