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누가복음 7:37~38)
당회장 이재록 목사
막달라 마리아가 지극한 정성을 내보이며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죄 사함을 받아 모든 저주가 끊어지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아 건강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됐지요.
무엇보다 상처난 마음이 치유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니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섬기며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지극한 사랑으로 끝까지 붙좇았습니다.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며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데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며
막달라 마리아는 어둠의 세력에 시달리고 고통받으며 삶의 아무 소망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들은 너무나 마리아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요. 그분을 만난다면 이 칠흑같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그녀는 예수님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몸으로 삯바느질해서 번 돈을 조금씩 모아 귀한 향유를 준비했지요. 마침내 예수님께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있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정성껏 준비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시몬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 앞에 이르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요. 사람들은 마리아를 본 순간 '여기는 너 같은 죄인이 올 곳이 아니다.'라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가까이 오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향한 마리아의 사모함의 향이 너무나 승했기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열어 주고 말았지요.
집 안에 들어가자 저만치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마리아는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인자한 모습, 어떠한 사람도 용서하고 품어 주실 수 있는 그 자애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너무나 고귀한 분이시기에 감히 앞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서 예수님의 뒤편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이르자 마리아는 눈물이 더욱 복받쳤습니다. 그 눈물은 예수님의 발에 떨어져 고귀한 발을 적시고 있었지요. 태어나서 행복이라는 것을 조금도 맛보지도 못하고 사랑 한 번 받지 못한 그녀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품어 주실 듯 사랑이 가득한 그분이 지금 자신 앞에 계신 것입니다. 갑작스런 마리아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 의아해했고 방안에는 마리아의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저가 누구인가? 왜 저러는가?' '아니, 저 죄인인 여인이 망측해라!' 하며 저마다 잣대를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하염없이 울던 마리아는 몸을 구푸려 머리의 수건을 벗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이어 그 위에 입맞추기까지 했지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많이 묻어 발이 깨끗할 리가 없었지요. 물도 귀해서 제대로 씻지 못하니 당시 예수님의 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손님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는 법인데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었으며 그 위에 입맞추기까지 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여인들은 함부로 머리를 내놓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귀히 여기는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온전히 낮아지는 겸손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받겠다. 치료받겠다."라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마리아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을 조종해서 나쁜 일을 하게 하는 못된 여인으로 간주했지요. 예수님만 아니라면 당장 그녀를 그곳에서 끌어내어 쫓아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만은 자신의 마음과 진실을 알아 주시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실 것이기에 상관이 없었지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한다 해도 예수님만은 죄인 취급하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뜻한 바를 주저함 없이 행했지요. 곧 눈물로 적신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씻어 드린 후,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린 것입니다.
2.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데에는 예수님을 향한 진한 사랑과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향유를 담은 이 옥합은 아주 좋은 그릇입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몸을 상징하지요. 그리고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주님께 자신의 몸을 드려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값비싼 향유일지라도 옥합을 깨뜨려야만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권위나 체면을 개의치 않고 생각과 이론의 틀도 깨뜨려 온전히 자기를 포기할 때에만 이러한 헌신이 가능하지요. 그런데 옥합은 아주 좋은 그릇이라 해도 향유를 담는 용기에 불과합니다. 귀한 것은 향유이지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 드린 향유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당시 향유는 대체로 값이 비쌌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베다니 마리아가 부어 드린 향유는 순전한 나드 한 근으로 그 값이 삼백 데나리온에 달했지요. 일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삼백 데나리온은 거의 1년 내내 일한 것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큰 돈입니다.
이처럼 값비싼 향유를 마리아가 준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치고 병든 몸으로 쉼없이 일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남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 졸이며 먹을 것조차 아껴 향유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향유를 드렸다는 것은 마음의 진실한 정성을 드렸다는 것을 뜻하지요.
다시 말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께 드린 것은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예수님께 모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변함없이 섬기며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는 곳까지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됐을 때도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가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았지요.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나뵐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옥합을 깨뜨려야 향유가 나온다는 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옥합이 상징하는 것은 몸이요, 이 몸은 육체의 소욕을 좇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합을 깨뜨렸을 때 향유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벗어 버릴 때만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막달라 마리아처럼 육체의 소욕을 벗어 버림으로 순전하고 거룩한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