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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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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신 뢰


13541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당회장 이재록 목사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말하는가 하면,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왔다., 많은 선지자 중 하나다.라고 했지요. 반면 귀신들렸다.는 등 악한 말로 비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자들은 선한 고백만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했지요. 이 고백은 베드로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주님의 부활 승천을 목도한 후 성령을 받고 그 신뢰가 온전해졌습니다.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며 살기등등한 백성과 관원들 앞에서도 담대히 주의 복음을 외칠 수 있었지요. 베드로는 주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과 온전한 신뢰 관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범사에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자기 유익을 좇아 생각합니다. 옳은 일을 잘못이라고 비난하고 선한 일을 악하다고 오해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틀린 줄 모르지요.

쉬운 예로,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게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나?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주 무례한 사람이네.' 하면서 상대를 좋게 여겼던 마음이 순식간에 변합니다. 누군가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하면 "내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척하면 척이지." 하고 단정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선한 사역을 악하게만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꼬부라진 채로 살던 여인을 고쳐 주시자 이를 본 회당장은 "안식일에는 노동을 하면 안 되는데 왜 안식일에 귀신을 내쫓아 주는가?" 하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그는 하나님 권능이 나타난 것도, 비참한 삶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 사랑을 체험한 것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치료받았어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싫어했을까요? 그는 사랑과 선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의와 틀로 판단하면서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고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신뢰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는 말씀처럼, 영의 생각을 해야 영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선하게 보지 못하는 자신의 악을 발견해 철저히 버리고 범사에 영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2.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그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버리는 만큼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칠 수 있지요.

귀신들린 딸을 가진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치료받기를 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고 아주 냉정하게 대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더 자신을 낮추며 끝까지 매달리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겸비함과 믿음을 칭찬하시며 즉시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막 7:25~30).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장면을 보고 예수님은 사랑이 없으시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분의 선과 사랑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궁구하지요. '예수님께서 저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참으로 선한 마음으로 궁구한다면 성령의 주관 속에서 예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인이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예수님께 서운함을 품거나 낙심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응답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변함없이 선한 고백으로 매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므로 응답받을 만한 공의를 채우게 하신 것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의도를 성령으로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도 그 깊이가 다릅니다. 좀 더 밝히 성령의 역사를 받는다면 예수님 뜻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지요.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아셨기에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기대대로 응답받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심한 모욕을 받은 것도 아닌데 조금만 자존심이 상하면 변개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참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 주시기 위해 이 여인의 겸비한 고백을 끌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한 마음으로 궁구하면 이런 예수님의 뜻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 선하신 뜻을 깨우쳐 나가는 만큼 예수님에 대한 신뢰도 더 깊어지지요. 성령의 역사를 받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갑니다. 그럴수록 신뢰와 사랑이 더해져 "나도 그 사랑을 의지해 영의 깊은 차원으로 곧 들어가리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3. 사랑이 커지는 만큼 신뢰도 커집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부터 신뢰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을 겪은 후에는 그 사랑의 차원이 달라졌지요. 사랑하던 스승이, 더구나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참혹하게 고난 당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예수님을 지켜드리기는커녕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저주하는 말까지 내고 말았지요.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어떤 책망도 없이 묵묵히 바라보셨고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목도한 후 베드로의 사랑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그 사랑이 깊어진 만큼 주님에 대한 신뢰도 완전히 달라졌지요. 전에는 어린 여종 앞에서도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살기등등한 사람들에게도 담대히 복음을 외칩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할 때도 그 신뢰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직 뜨거운 사랑과 굳건한 신뢰 속에 영광스러운 순교를 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신 이후, 저도 아버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해도,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연단이 와도,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은 한순간도 변함이 없었지요.

개척 당시에는 많은 성도 앞에서 하나님께 7주 동안 책망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억울해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요. 다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지 잘 깨우쳐서 고치려는 마음과 감사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허락하신 이유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저의 흔들림 없는 신뢰를 나타내 보이시므로 권능을 더해 주셨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역사 가운데 자신을 발견하며 신속하게 변화돼 참마음을 이루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과 온전한 신뢰 관계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천국 새 예루살렘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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