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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후 2:27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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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선(善)


13364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일서 1:5)



당회장 이재록 목사


하나님 자녀라면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고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이 전혀 없는 선을 이뤄야 하지요. 선은 하나님 속성이므로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만이 선의 기준이 됩니다(눅 18:19).

그러므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자신의 마음에 있는 악을 발견해 버려야 하나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선을 이룬 만큼 천국에서도 영광을 누리며 모든 행함에 대한 상급도 온전히 받을 수 있지요. 이처럼 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기 정당화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봄으로써 부족한 분야는 부지런히 채워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자신의 부족한 분야를 알면서도 변화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비록 더 선한 것을 행치 못할지라도 악을 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선도 아닙니다.

예컨대, 온 집에 충성해야 한다는 말씀은 익히 들어 잘 압니다. 그런데 한 여성도님이 교회 직분에는 충성하는데 가정에서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와 본분은 등한시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여러 역할 중에서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선한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일로 바쁘다면서 자신의 부족한 분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덜 중요한 일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만일 가족이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참아주겠지만 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상처와 아픔으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가족이 믿음이 없다면 화평이 깨어지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기도 하지요. 우리가 육 과 영의 갈림길에서 영을 택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족이나 일가친척, 세상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심지어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말씀합니다.

혹여 여력이 되지 않아서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으로 인해 바쁘다 해도 온 집에 충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분야를 마음에 품습니다. 열 가지 일 중에 두세 가지 밖에 못한다 해도 마음 다해 사랑과 섬김으로 행합니다. 그러면 상대도 진심을 느끼므로 서운해하지 않고, 영적으로도 사단이 송사할 수 없지요. 따라서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범사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유익을 좇으면서 자기를 정당화하는 것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2.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은 참으로 교묘하게 발동합니다.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높아져버리지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원래 평범한 백성으로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돼 섬김을 받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높아졌지요. 왕좌를 이용해 권세를 휘두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은 선지자 사무엘조차 두려워해야 할 지경이 됐지요. 사울이 착한 신하 다윗을 죽이려 해도, 제사장의 성읍 전체를 몰살시키는 무서운 만행을 저질러도 주변에서 감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왕으로 세워지는 것을 민망히 여겨 숨기까지 했던 사울의 모습이 어느새 이렇게 교만한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혹시 나는 사울 왕처럼 높아진 것도 아니고 교만할 만한 조건도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누구든지 성결되기 전에는 언제든 교만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마음의 할례를 더디 하면서도 열심 내고 헌신한 것만 생각해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여깁니다. 그러다 막상 믿음의 성장이 기대보다 못하면 실망하며 남과 비교하면서 불편해하지요. 또 자신이 머리이고 나이도 많고 연륜도 있으니 상대보다 자신의 의견이 옳고 더 낫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교만이 틈타면 아랫사람이나 주변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지요. 분명히 상대는 좋은 말로 지적과 권면을 해 주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은 질서를 어기는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연합회 행사 시 연합 총무가 한 일꾼에게 분홍색 천으로 행사 장소를 장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일꾼은 분홍색 천보다 흰색이 더 좋겠다고 건의를 합니다. 그러나 총무가 "그냥 분홍색으로 해 주세요." 했지요. 이때 이 일꾼이 연합회장에게 가서 총무가 분홍색을 지시한 사실은 숨기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 버립니다.

이렇게 자기 뜻대로 하고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총무보다 윗사람인 회장에게 허락받았으니 불순종한 것도 없고 사명도 잘 감당했다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사명을 감당했다 해도 이런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서 선하다 하실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했고,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하지 않고 겸비한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3.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라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게 됩니다. 단지 어떤 일을 해내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와 더불어 충성하며 항상 화평함을 좇고 사랑 가운데 상대 유익을 구하지요. 반면, 자기 보기에 열심인 사람은 책임감과 열정은 있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 뜻을 벗어나는 경우가 생깁니다.

비유를 들면, 어느 선교회 회장이 처음 직분을 맡아 행정적인 일에 능숙하지 않습니다. 이를 보고 경험 많은 총무가 안타까워서 회장에게 업무를 알려 주지요. 그래도 회장이 잘 감당하지 못하자 결국은 자신이 앞장서서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총무는 '회장님은 가르쳐줘도 잘 모르네. 내가 다 하면 앞으로 매번 나한테 맡길 텐데.' 하면서 기쁨으로 감당하지 못하지요. 그러면서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일을 진행합니다. 아니면 세세하게 보고는 하지만 내가 다 했다는 자긍심, 혹은 불만을 담아서 상대에게 찌르는 표현을 하지요.

또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자기 마음에 맞게 움직여 주지 않으면 마음이 요동칩니다. '왜 일을 이렇게 할까? 이것 하나 책임감 있게 못하나?' 하며 마음이 상하지요. 그러다 보니 짜증섞인 말과 상대를 찌르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일을 이뤘기에 총무로서 잘 감당했다고 생각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열심에 눈이 가려진 사람은 일하면서 화평을 깨고 질서를 어겼다는 지적을 받으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섭니다. 자신이 선하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서운하게 생각하며 열심 내던 모습도 변질되지요. 이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 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적인 열심인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는 열심인지 잘 점검해 온전한 선의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 빛 가운데 행함으로 온전한 선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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