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전 10:3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최신 업데이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14252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상 1:27~28)



당회장 이재록 목사



'한나'라는 여인은 수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까지 멸시를 당해 심중에 괴로움이 컸지요.

어느 날 한나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키워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합니다. 이에 응답을 받아 낳은 아들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이지요. 아이가 젖을 떼자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려와 여호와의 집에 있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했지요.

이런 한나의 중심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소원대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중심을 원하시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변개함이 없는 중심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합니다. 변개함 하나만 두고도 삼가 입술을 지켜 가볍게 말을 하지 않기 위해 힘쓰며, 자신이 결정한 바를 임의로 바꾸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명심하지요.

처음 여러분이 사명을 받았을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을 온전히 이루겠습니다." 고백한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변함없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드리고 계신지요? 아니면 예전의 모습과 달리 마음이 해이해지지는 않으셨는지요?

모임 시간에 늦는다거나 사적인 일로 한 번, 두 번 빠지진 않으십니까? 때로는 남보다 자리를 먼저 비워야 할 때에 가졌던 민망한 마음도, 부끄러운 마음도 이젠 사라져 버리지 않으셨는지요?

물론 "제 자리를 변함없이 지켰습니다." 당당히 고백하실 수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행해 나가고 있는지요?

예를 들어 "감정을 버리겠습니다.", "남편을 섬기겠습니다.", "선한 입술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기도합니다. 이렇게 입술로는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막상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26~28절에 나오는 '한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변함없는 중심이 정녕 무엇인지를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잉태케 해 주셨지요. 그토록 바라던 자녀를 품에 안았을 때, 한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너무 사랑스러워 기쁨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들 사무엘을 드릴 때 한나의 마음이 흔들려 "하나님, 아직은 이 어미의 손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나중에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을까요? 오히려 그녀는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며 하나님께 서원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변개치 않고 서원을 지키니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한나처럼 변함없는 중심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더 큰 힘과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2. 타협하지 않는 중심

타협이라는 말을 들으면 초신자들이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는 분야가 쉽게 떠오릅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도, 각 사람이 거쳐 온 환경과 신앙생활의 과정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타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춰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분야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다.' 하며 자기 좋을 대로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주부는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다른 사명들을 감당하다 보면 가정에 마음을 더 쓰지 못해 남편과 자녀로부터 투정 섞인 말을 들을 때가 있지요. 그때 "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핑계를 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사명으로 포장해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자신이 속한 교구와 선교회를 돌아봐야 할 때 "내 사명이 우선이다." 하며 다른 일은 등한시하면서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다른 모임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기도라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도 없이 사명을 앞세워 자신을 정당화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지요. 능력을 쌓아 자신의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더 큰 상급을 쌓을 수 있습니다.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여러분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든 것이 합당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정녕히 합당한지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매사에 하나님 뜻이 우선시 돼 '과연 어느 쪽이 선일까? 진리일까?' 궁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의 입장이나 뜻이 개입되지 않고 하나님 뜻을 좇을 수 있습니다. 타협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핑계와 변명이 나오지 않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에 보이지 않던 부족함을 발견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도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습니다.


3. 영적인 사랑이 있는 중심

내 유익을 구하지 않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처럼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며 늘 상대의 입장이 돼 상대의 유익을 구하지요. 반면에 상대의 유익을 구한다 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된 입장에서 평소 화평을 깨트리는 회원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지적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권면을 듣고는 그 회원이 이내 불편한 내색을 합니다. 자신의 권면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여전히 모임의 분위기를 흐리지요. 이럴 때 "내가 사랑으로 권면해 줬는데 참 강한 분이시네." 하며 오히려 서운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 말에는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질서상 머리인 자신의 말에 순종해 주기를 원하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요.

정말 그 회원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면 받는 입장에선 권면이 사랑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내가 혹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행함은 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 행할 때에 확실하게 응답받을 수 있지요. 또 사랑의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마음 그릇도 함께 넓어지며, 그릇이 커질수록 주변의 모든 일을 넉넉히 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다면 똑같은 환경에 있다 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 앞에 변개함이 없고,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으며, 내 유익을 구하지 않는 영적인 사랑이 있는 중심이라 인정을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기둥같이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