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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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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12721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당회장 이재록 목사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가엾게 여긴다, 불쌍하게 생각한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은 '누가 범죄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 중심에서 용서하고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마음'이지요. 이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양선의 마음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차원입니다.

양선은 '악이 전혀 없으며 오직 선만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양선의 마음이 행함으로 나타나되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더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긍휼이지요. 진정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면서 팔복 중에 다섯번째 복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한없는 용서의 긍휼

마태복음 12장 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는 양선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주는 더한 사랑으로 용서의 긍휼을 베푸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즉시 징벌하지 않고, 어찌하든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해하고 용서하기보다는 같이 미워하고 다투며 상대의 허물을 들춰내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받은 하나님 자녀들이 진리대로 살지 못한다 해도 즉시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아직 온전치 못해 범죄하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하든 성령으로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하며 인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지요.

이러한 용서의 긍휼은 하나님 마음이시기도 합니다. 죄로 인해 무서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모든 물과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자녀가 됐다고 하면서도 또 다시 죄를 짓는지요. 하나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즉시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긍휼로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회개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 않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지요.


2. 사랑을 담은 징계의 긍휼

'징계'는 용서와 반대되는 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징계의 긍휼은 미움이나 정죄함이 아닌 사랑으로 하는 징계이기에 상대가 변화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이 징계의 긍휼 역시 하나님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통해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이러한 징계가 없다면 구원받은 후에도 다시 '세상이 좋다'며 어둠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 마귀에게 가는 것을 지켜 보고만 계시지 않고, 징계를 통해 돌이킬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가령, 자녀가 나쁜 짓을 했을 때 이를 바로잡는다고 무조건 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 행동이 나쁜 것인지 알려 주고, 자녀가 중심에서 뉘우치도록 부드럽게 타이르지요. 그러나 자녀가 말로만 회개하고 계속해 범죄한다면 부모님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징계의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더 이상 빗나가지 않도록 징계를 통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같은 징계라도 사랑이 없으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고 합시다. 아이가 마음 중심에서 용서를 빈다면 선한 사람은 긍휼히 여겨 용서해 줍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혈기를 내고, 아이를 책망하거나 심지어 용서를 빌어도 처벌을 요구하지요. 또한 처벌하지 않는다 해도 잘못을 주변 사람에게 전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이것은 긍휼이 아닐뿐더러, 결코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비록 상대가 잘못을 했다 해도 그 사람의 입장과 장래를 생각해 사랑으로 징계할 때라야 징계의 긍휼에 속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형제가 범죄했을 경우, 진리로 권고하고 징계하는 과정이 나옵니다(마 18:15~17).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주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에게 사랑으로 권면해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만일 권면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이나 단체의 윗분에게 말해 돌이키게 해야지요.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알려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교회 말도 듣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과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대로 하되 어떤 범죄라 할지라도 사람을 판단 정죄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징계를 한다 해도 사랑의 긍휼을 베풀어야 우리도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올바른 구제의 긍휼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16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혹자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나도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들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렇다고 누가 어렵다고 해서 무턱대고 구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범죄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요. 이 외에도 긍휼을 믿음의 형제뿐 아니라 세상 사람에게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4.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과연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설령 자신을 힘들게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면,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실수로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부요하고 강건한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건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됐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축복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긍휼을 이루고 행하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생명과 위로를 주는 자가 되어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긍휼히 여기심을 받으며 영원히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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