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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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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관용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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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야고보서 3:17)


당회장 이재록 목사



우리가 사심을 버리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늘의 지혜가 임해 영적인 여유가 생깁니다. 옳은 것을 쉽게 분별할 수 있고,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어렵지 않지요. 이는 당장은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으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진리를 행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또 진리의 길이 밝히 보이므로 다른 사람의 문제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지요. 바로 관용의 지혜로 얻은 열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관용의 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1. 관용의 영적 의미

관용이란 사전에서 '너그럽게 용서하고 용납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영적 의미는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으므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우리가 물질은 물론 시간과 노력, 관심, 섬김, 생명까지도 다 내어주려면 진리가 마음에 가득 임해야 합니다. 풍성한 진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신 가장 좋은 모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와 허물이 없으셨습니다. 그 마음이 온전한 진리 자체이셨고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잡수시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시면서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영혼들을 위해 많은 수고와 눈물을 쏟으시고 결국은 생명까지 내어주셨지요. 죄와 허물이 없으신 분이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풍성한 진리의 마음으로 자신을 다 내어주심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해 천국으로 이끄셨지요.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을 내어주셨습니까? 설령 큰 손해가 난다 해도 자신의 것을 줄 수 있으신지요? 자신의 유익과 취향, 자존심, 주장 등을 고집하면 자신을 내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2. 관용의 지혜로 누리는 복

이 세상에서는 자기 것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고 잘 지켜야 똑똑하다고 합니다. 하나를 주면 그 이상을 받아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사도행전 20장 35절에는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며 참된 지혜입니다. 자신의 것을 넉넉하게 내어주며 섬겼을 때 결코 손해가 아닌 당장의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되지요. 바로 이것이 넉넉한 관용의 마음에서 비롯된 지혜의 열매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혈기, 욕심, 변개함 등 비진리가 있는 만큼 넉넉하고 관대한 모습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관용을 '자신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 하지 않고, '마음에 진리가 풍성히 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축이 많아지자 제한된 땅에서 물과 풀을 얻어야 하므로 종들 간에 다툼이 발생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합니다. 즉 롯이 먼저 갈 곳을 선택하면 자신이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말이지요.

그러자 롯은 자기 유익을 좇아 물이 넉넉하고 기름진 땅을 선택해 떠났습니다. 도리를 따진다면 당연히 롯이 아랫사람으로서 종들끼리 다투었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삼촌이 마음 쓰지 않도록 먼저 처신해야 했지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은혜도 모르고 떠난 롯을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것을 내어주고, 더 달라 해도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롯에게 다 주고 양보했으니 손해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한 그에게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모든 땅과 티끌처럼 수많은 자손을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넘치는 관용을 베풀었으며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 이상의 선을 행했기에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공의가 성립된 것입니다.


3. 관용에서 나오는 진리의 자유함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합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가 족쇄처럼 여겨지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행하는 사람은 자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유를 들면, 범죄자는 경찰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선량한 시민은 경찰을 보아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맙고 든든해하지요. 마찬가지로 진리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법이 사랑이며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알기에 즐거워합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라, 안식일에는 영업하지 말라, 안식일에는 세상 오락을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족쇄처럼 불편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주일 성수를 하면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림으로 평안과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믿기에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진리를 행하면서 기뻐하며 자유함을 누리게 되지요.

또 다른 예로, 우리가 미움을 버리면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집니다. 진리가 죄의 멍에를 풀어 주고 자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마음에 가득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자유함을 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진리대로 살지 않는다 해서 내 생각에 맞춰 판단,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음에 진리가 가득하다는 것은 진리를 머리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했습니다.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을 알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가 섬김 받기 원하는 모습을 보면 금방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저 사람은 참 마음이 높구나!'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정작 자신이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합니다.

진리가 가득해 관용의 마음을 이루면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바라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지만, 상대의 허물과 비진리를 사랑으로 품고 덮어 주지요. 과거에 수많은 허물이 있었던 자신도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처럼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비록 상대가 악으로 행한다 해도 판단 정죄하지 않으며, 그를 소중한 영혼으로 여기고 진리로 이끌어 줍니다. 이런 마음을 이룰 때 상대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관용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을 진리로 가득 채워 관용을 이루면 하나님 사랑이 넘치고 풍성하게 됩니다. 내 것을 나눠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남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보아도 시기, 질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더 많이 누리도록 내 것까지 내어줄 수 있지요.

여러분도 관용의 지혜를 받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고,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진리의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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