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야고보서 3:17)
당회장 이재록 목사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화평을 좇으면 관용과 양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면서 생기는 넉넉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임하는 덕목입니다. 그러면 양순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양순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말과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과 진리로 가득하면 외적으로도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선하다 해서 단순히 착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한 면도 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이것도 가하고 저것도 가할 때 성령으로 분별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깊은 선의 차원입니다. 이러한 양순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로 문제의 핵심을 분별해 상대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영적인 선과 진리로 가득찬 마음에는 어둠을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따라서 양순한 사람은 상담할 때에도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상대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사심이 있으면 자기의 유익이나 감정이 앞서 눈이 가려지지만 사심이 없으면 문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심이란 자기 욕심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내 것, 내 가족, 명예와 권세, 자존심, 자신의 안일함을 구하는 모든 것이지요.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유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모의 유산을 공평히 나누도록 자신의 형에게 권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때 유산을 어떻게 분배했는지, 형이 얼마를 더 줘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뜻밖에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가 탐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이후로도 형제간에 감정 상할 일이 계속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축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답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이뤄야 모든 문제의 근본을 볼 수 있습니다.
2.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잠잠히 하나님 뜻을 분별하며 자족합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양순의 마음을 이루면 모든 것이 풍요로울 때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어렵다'며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모든 상황을 감내해 나갑니다. 자신이 당면한 어려움보다 마음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문제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당황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 뜻을 깨닫고자 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늘 평안하며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택해 행하게 되지요.
우리가 양순의 마음으로 범사에 자족하며 선을 행해 나가면 성령님이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혹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 이상으로 행합니다
엄마가 외출하면서 어린 아들에게 "나갔다가 올 테니까 동생 잘 돌보고 숙제도 해 놓으렴." 당부했습니다. 엄마가 돌아와 보니 아들이 숙제는 물론 청소까지 깨끗이 해놓은 것입니다. 숙제를 다 하고 놀아도 될 텐데 엄마 마음을 헤아려 자기 할 일 이상을 한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이와 같이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범사에 더 좋은 것을 분별해 행하며 하나를 명하셔도 하나님 마음에 맞춰 둘, 셋 혹은 그 이상을 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볼 때에 매우 기뻐하시며 "내 마음에 합하다." 하시지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만약 한쪽은 진리이고 다른 한쪽은 비진리라면 당연히 진리를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진리라면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합니다. 하지만 양순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고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양순의 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땅히 행할 것 이상을 행합니다.
4. 양순의 지혜가 임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의 행함과 고백을 보면 양순의 마음이 풍성하게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알기 전에도 구약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절제했지요.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 고백합니다. '우상의 제물로 바친 고기를 성도가 먹어도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물론 먹기 전에 우상의 제물인 줄 알았다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고기의 유통 과정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에 불가피하게 먹어야 할 상황이라면 먹어도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롬 14장). 단순히 음식으로 먹는 것일 뿐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상의 제단에 올렸던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꺼림칙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 그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우상 숭배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단순히 음식물로 생각하고 먹으면 상관이 없지만 우상의 제물로 생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먹으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행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거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롬 14:23).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믿음으로 먹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이를 본 사람이 실족한다면 차라리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설령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영혼을 실족시키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행함을 기뻐하시고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밝은 영감과 지혜도 더하셨기에 성도들에게 우상의 제물뿐 아니라 결혼이나 이혼, 가정과 일터에서의 문제, 성령의 은사, 성찬식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지혜와 명철로써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양순의 지혜를 받아야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을 택함으로 하나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으며 선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진리로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이 선과 진리로 가득해 양순의 지혜를 받으며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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