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일서 4:16)
당회장 이재록 목사
눈으로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을 포근하게 덮어 주기 원하시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요. 예수님은 3년의 짧은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다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지요.
이렇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랑,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도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하지요. 즉 진리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으니 죄와는 상관없이 살아가야 하는데, 오늘날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교회들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물들어가는 마지막 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오래 참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이유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자녀들과 서로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누리기 원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자녀를 쉽게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셔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지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6천 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아는 참된 아들, 딸이 나오리라.' 간절히 기대하시면서 참으셨지요. 영적으로 '오래 참는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밀려오는 모든 여파를 감당하며, 열매를 낼 때까지 대가를 치러 내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그 여파를 감당하며, 대가를 치르기 위해 큰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사랑스럽게 지으신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해야 할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홍수의 빗줄기만큼이나 하나님의 가슴에도 눈물이 흘렀지요. 또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셨고, 결국 그들이 멸망하는 것도 보셔야 했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이 인생들에게 멸시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도 보셨지요.
하나님께서 신성을 가진 분이라 해서 이런 일들을 쉽게 감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성도 가지셨기 때문에 아픔과 슬픔, 기쁨과 감동을 느끼시지요. 더구나 선 자체이시기에 이런 감정들을 더욱 절절하게 느끼십니다. 소중하게 창조한 세상이 죄로 물들고 인생들이 악을 발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어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처음에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역사를 마칠 때까지 반드시 참 자녀들이 나오리라는 믿음으로 긴 세월을 참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받고 즉시 주님을 믿지 않았다거나, 교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죄를 버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몇 번 기회를 주시다가 포기하셨다면 아마 구원받을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참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버리지 않고 변화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많은 권능을 보았습니다.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는 것을 보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체험들을 무수히 했는데도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영광을 볼 때는 기뻐하고 찬양했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 불평을 쏟아내며, 불순종에 불순종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고자 하셨지만 모세가 생명을 걸고 용서를 받아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도 모세가 담대히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공의로 따지면 멸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어찌하든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더 깊은 마음임을 모세는 잘 알았습니다.
모세 입장에서 보면 오랜 노예살이 속에서 심히 강퍅해진 백성을 인도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새 백성을 이뤄 처음부터 율법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훨씬 순종을 잘 할 수도 있지요.
만일 여러분이 아들을 낳아 애지중지 키웠는데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다면 "어차피 완치도 안 되는데 이런 아이를 키우느라고 더 이상 고생하지 말자. 건강한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잘 키우면 되지." 하고 아픈 아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아질 가능성이 티끌만큼만 있어도, 집안의 재물을 탕진한다 해도 끝까지 아이를 고쳐 주려고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십니다. 노하기도 하고 호되게 책망도 하시지만 버리실 수가 없으셨지요. 어찌하든 살려서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지난날 여러분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선했다." 할 수 있으십니까? 의와 틀은 얼마나 강했고, 얼마나 많은 불순종을 낳았습니까? 주변에서 볼 때 '저분이 언제나 변화될까?' 생각할 정도로 답답하고 변화가 더딘 분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고,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사랑 까닭에 지금도 여러분이 새 예루살렘을 바라며 달려갈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영광의 열매를 얻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 17장 24절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닮은 참 자녀가 돼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원하셨지요.
물론 낙원만 가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간발의 차이로 지옥의 불길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 것은 낙원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아직 죄를 다 버리지 못해서 부끄럽고 민망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로 변화돼 큰 영광을 누리기 원하시지요.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알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야 함을 알지요. 이렇게 더 큰 영광을 구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이고 버리지 않고 변화시키는 사랑이며, 큰 영광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회개해 구원받는 것은 물론, 믿음의 반석에 서서 영과 온 영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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