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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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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15392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7~18)


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람들이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면 전혀 사실이 아닌 일에 대해서도 사실인 것처럼 확신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이나 생각 등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편벽이라고 말합니다. 편벽이 있으면 거짓을 낳기 마련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거짓과 편벽이 없어야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무엇이 참인지 정확히 분별할 수 있지요. 그럴 때 수정같이 맑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편벽과 거짓이 없으려면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편벽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사에 치우침이 없다면 누구를 대하든지 한결같습니다. 외모나 경제적 여건, 학벌 등 상대가 가진 조건에 따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지 않지요. 무엇을 하든지 편벽이 없으려면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배워도 마음에 사랑과 긍휼이 없으면 바르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에 '원수도 사랑하라' 하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성품, 내가 옳다고 하는 것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과 긍휼이 없는 만큼 좌우로 치우치고 상대의 언행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쉽게 상대를 판단 정죄합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볼록렌즈로 보면 뚱뚱해 보이고 오목렌즈로 보면 홀쭉해 보입니다. 만일 렌즈에 비치는 모습만 보고 "당신은 뚱뚱하다. 말랐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본 대로 말한다." 하지만 분명히 실제와 다르니 거짓말이 됩니다. 이로 인해 상대가 피해를 입고 상처받을 수도 있지요. 자신의 편견 속에 상대를 바라보면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거짓이 섞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하고 사랑과 긍휼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어떠한 모습을 봐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감싸주려 하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열매를 맺는 반면, 편벽되이 행하면 판단과 정죄로 진실을 왜곡하며 생명을 잃게 만드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옳다는 편벽된 시각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이에 맞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단정지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치시자 안식일을 범했다고 했지요. 원래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안식을 취하라'는 의미이지요.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편벽됨 속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판단 정죄한 것입니다.


2. 편벽됨으로 거짓 열매를 내는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편벽됨으로 일상에서 얼마나 거짓 열매를 내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가 두 자녀를 야단칠 때도 그렇습니다. 형에게 왜 다퉜냐고 물었을 때 "동생이 먼저 때렸어요."라고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동생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물어 보면 "형이 장난감을 뺏으려고 해서 그랬어요."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부모가 형의 말만 듣고 동생을 혼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부모가 형을 편애하거나 동생이 늘 말썽을 부렸다면 형의 말만 믿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라면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유익과 생각에 맞춰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벽된 시각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거짓된 언행이 나옵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을 범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믿지 않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며 어떻게든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반면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이나, 나쁜 선입관이 있는 사람의 소문은 금방 믿어 버립니다. "전에도 이러한 잘못을 하더니 또 그랬네. 그 사람 어쩐지 마음에 안 들더라." 하며 그를 싫어하는 마음을 정당화시키기까지 합니다. 편벽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소문을 쉽게 받아들이고 상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갑니다. 바쁘거나 딴생각을 하느라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시력이 나빠 못 보았거나 화장을 하지 않아 민망해서 사람들을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편벽된 시각이 있으면 나쁜 쪽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참 무례하네. 전에 부탁한 것을 안 해 주어서 그런가?" 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안에서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눈이 가려져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지혜로 범사에 진실하려면

첫째로, 약한 사람에게 치우치는 것도 진리 안에서는 편벽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출 23:3). 이해 관계에 따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 편을 들어서도 안 되지만, 가난하고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두둔한다거나 친분이 두텁다고 정에 치우친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흔히 강자와 약자가 다툴 때 약자 편을 드는 것이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하지요.

둘째로,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입관이나 편견이 있으면 직접 보고 들어도 진실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남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추측만으로 단정한다면 큰 잘못을 범할 수 있지요. 그러니 매사에 보고 듣고 판단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셋째로, 편벽과 거짓이 없으려면 감정과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합니다. 예컨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교만하여 질서를 어긴다. 불의하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원칙을 어기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또 회의 때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의견을 내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호적인 사람이 의견을 내면 유연한 자세를 취합니다.

따라서 범사에 자신의 감정이나 사심이 작용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욱 공정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요. 특히 직분상 윗사람이라면 더욱 근신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치우치지 않게 분별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한 것도 남들이 보기에는 정과 욕심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는 들보와 같이 큰 죄가 있으면서 상대의 티를 보는 것은 영적인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면 사람의 마음이나 일의 전후 상황까지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선으로 보고 느끼며 생각함으로 범사에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분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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