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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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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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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0일 일요일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당회장 이재록 목사





일반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 사랑이 가득하면 악한 사람이라도 선으로 이해할 수 있고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이래서 좋고, 저래서 싫다." 하지 않으며 싫은 사람도 없고 미운 사람도 없습니다. 불편한 사람도 없고 원수는 더더욱 없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끝없는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여쭈었지요. 베드로는 상대의 잘못을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크게 자비를 베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답변하셨지요. 이는 일흔 번씩 일곱 번, 490번만 용서해 주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7은 완전수로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것은 완전한 용서, 즉 무한대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490번만 용서해 주셨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에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내게 잘못한 사람에게 오래 참으며 용서와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회개의 기회를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8~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중하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멸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근거라도 찾고자 사자(使者)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해 보고자 여러 차례 간청을 하지요. 의인 오십 인에서부터 시작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하지요.

예레미야 18장 7~8절에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했습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히 죄악에 물들어 돌이킬 수 없는 악의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멸하실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니느웨 백성은 달랐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해 심판의 경지에 이른 니느웨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요나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선포하자 왕을 비롯해 온 백성과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지요.

또한 에스겔 33장 14~15절에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회개해 온전히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과를 기억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3.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피조물인 사람들이 조롱하고 핍박하며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박았을지라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셨습니다(눅 23:34).

여기서 '저희'란 당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신 후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할 온 인류를 지칭합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과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리를 알지 못해 범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사랑의 간구를 하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도 아무 죄없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렸습니다(행 7:60). 그런데 오늘날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려고 하면 원수 마귀 사단은 악한 자들을 사주해 핍박하고 방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령 나를 핍박하고 애매히 고난을 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과 스데반 집사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대신 용서를 구하는 사랑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 반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사망에 이르는 죄 곧 사함 받을 수 없는 죄는 구하지 말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지요. 내게 선을 베풀고 잘해 주는 사람뿐 아니라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줘야 합니다.

한없는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며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또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30편 3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지 않고 공의대로만 판결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의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용서를 우리도 받았기에 아무리 내게 해를 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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