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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특집]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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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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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순수한 복음의 진수를 전하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 세계 만민을 깨우고 있는 사랑과 권능의 목회자.
1982년 장년 9명과 어린이 4명이 모여 시작된 만민중앙교회를 성령의 역사 속에 전 세계 1만여 지·협력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초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신 후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입증하신 것처럼 이재록 목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권능을 통해 성경이 참된 진리임을 확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에스토니아 등에서 대규모 연합집회 부흥사로 활발하게 사역해 왔으며 집회 시 폭발적인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CNN에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2009 이스라엘 연합대성회'는 220여 개국에 중계됐고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지금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북한선교를 이뤄 마지막 때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섭리를 온전히 이뤄 드리고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있다. (www.drlee.or.kr)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한일서 4:9~10)
1.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존귀와 위엄을 갖추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지요. 짐승과 다름없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 타락해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며, 죄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누우시며 추위를 견디고 비를 맞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대로이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낮은 자리에 거하시며 가난하고 헐벗은 길을 가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와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각색 질병과 모든 연약함을 치료하신 예수님
하나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갈릴리 지방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며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또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예루살렘과 유대에서도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 4:17~2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표적을 시작으로(요 2장), 유대와 갈릴리 인근 지역을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어느 날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힐책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소경이었던 자가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당당히 고백합니다(요 9:32~33). 이렇게 온갖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시며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시니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게 됐지요.
3. 오직 선과 사랑으로 행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를 본 회당장이 분내며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합니다(눅 13:14). 즉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레 23:3)는 말씀을 오해해 선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비난하고자 했습니다.
만일 회당장 자신의 자녀가 귀신에게 18년 동안 고통을 받았다가 안식일에 치료받았다면 어떠했을까요? 눈물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만 급급했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깨우쳐 주셨습니다(눅 13:15~16). 즉 안식일에 소나 나귀와 같은 짐승들도 먹이고 살펴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 자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심령을 해부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해치 못하며 오히려 부끄러워했습니다. 또한 온 무리가 예수님의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지요(눅 13:17).
4.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장사된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오지요(요 11:41~44). 실로 예수님의 행하시는 모든 것이 진실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임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보고도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마음에 시기가 가득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면서도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며 자신들의 메시아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을 보실 때에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누가복음 13장 34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애통하시며 탄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그러면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심정을 느껴 볼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 분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7절에 나온 대로 대제사장들은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고 명을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슥 9:9). 죽음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이때 유월절을 준비하러 온 많은 유대인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자기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막 11:9~10).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체포당하시기 하루 전인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신 후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시지요.(요 13:3~11)
하나님 아들로서 피조물의 가장 더러운 곳인 발을 씻기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심같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더욱 섬기고 희생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부활절 공연 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이 지나가시는 길에 자신들의 겉옷이나 나뭇가지를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 환호하는 모습을 재현했다(2004년 부활절 칸타타 중에서).
6. 제자들을 끝까지 섬기며 사랑하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 예언하시고 떡 한 조각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4:21).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어떻게든지 하나님 사랑을 전해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베드로를 향해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막 14:30). 이는 베드로를 책망하시고자 함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는 하지만 후일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이처럼 사랑해 주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구나.' 하며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며(요 14:1), 천국 소망을 주시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하셨지요. 이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몸은 비록 이 땅에 없을지라도 성령으로는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평안을 누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김과 같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7.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앞으로 자신이 당할 고통을 이기시기 위해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하셨지요.
예수님의 눈 앞에 닥쳐온 고난은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감당하셔야 하는 고통과 죄인들을 대신해 하나님 앞에 철저히 외면당하셔야 하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고뇌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오직 하나님 뜻만을 좇기 원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참으시고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도록 허락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원수 되어 죄악을 행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으니 그 사랑을 무엇으로 다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8.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마침내 골고다 처형장에 끌려가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피조물의 손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심은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요, 손과 발에 못 박히심은 우리의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지요. 히브리서 9장 22절 말씀대로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으므로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달려 죽어야 하는 나무 십자가에 대신 달려 피를 다 쏟으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 매달려 있어야 하므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이렇게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고통당하고 계셨는데, 정오 12시가 되자 갑자기 온 땅에 어둠이 임하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됐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이 당하는 고난을 함께 느끼시고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이 하늘도 빛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운명 직전에 크게 소리 질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셨는데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입니다(막 15:34). 사랑하는 아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사랑을 깨우쳐 구원의 길로 나오라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는 앞으로 세상에 살아갈 무수한 사람을 생각하시면서 그들에게 왜 자신이 피 흘려 죽으셔야 했는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지요. 또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눅 23:46).
이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이 다 헐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와 예배할 수 있게 됐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을 이루게 됐으며, 하나님 자녀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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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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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왜 침노를 당하는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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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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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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