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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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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기획특집_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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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0일 일요일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순수한 복음의 진수를 전하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 세계 만민을 깨우고 있는 사랑과 권능의 목회자.

1982년 장년 9명과 어린이 4명이 모여 시작된 만민중앙교회를 성령의 역사 속에 전 세계 1만여 지·협력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초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신 후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입증하신 것처럼 이재록 목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권능을 통해 성경이 참된 진리임을 확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에스토니아 등에서 대규모 연합집회 부흥사로 활발하게 사역해 왔으며 집회 시 폭발적인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CNN에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2009 이스라엘 연합대성회'는 220여 개국에 중계됐고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지금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마지막 때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뤄 드리고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있다. www.drlee.or.kr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아무 죄없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됐습니다.

예수님처럼 죄인들의 허다한 허물까지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한다면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씀의 의미

흔히 허물은 그릇된 실수나 잘못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성질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할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이를 허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둑질을 했을 때에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하지요.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단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오래 참음으로 상대가 잘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며 변화될 모습을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될지라도 그것을 덮어 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인내하며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녀라면 상대의 흠과 티를 드러내거나 없는 허물을 만들어 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을 버리고 상대의 허물까지도 덮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2.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이루려면

상대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가만히 끊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경상의 인물로는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지요. 만약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그녀를 돌로 쳐죽이도록 내놓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마리아에게 그런 허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에게 바로 이런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됐음을 천사를 통해 알려 주셨지요(마 1:20).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상대에게 상황을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배신감을 느끼며 미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주며 이해하려는 자세만 되어 있어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한 대로 믿음의 형제 사이에는 서로 다투어 허물을 드러냄으로 불의한 자가 되느니 차라리 누명을 쓰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악을 행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기에 얼마든지 악한 자들의 음모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묵묵히 공의의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시므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나와 이방 나라의 임금과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전지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비록 억울하게 누명을 쓴다 해도 용서하고 참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사랑과 용서, 인내와 오래 참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혹여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어떤 해를 입었다면 두고두고 마음에 쌓아 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지워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 나갈 때에 사람의 마음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합력해 선을 이뤄 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씀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예가 나옵니다. 바로 노아와 그의 세 아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지요. 하루는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준 것이 아니라 다른 두 형제에게 가서 알렸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장막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이켜 하체를 보지 않았지요(창 9:23). 이처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 허물을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낸 함과 비교해 볼 때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으며, 설령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마치 그것이 자신의 허물인 것처럼 민망히 여기게 됩니다.

흠과 점과 티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의 허물을 지적하고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용서를 베풀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영혼들의 아픈 곳을 싸매 주셨습니다. 죄인의 허물을 보면 덮어 주시며 돌이켜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부모나 형제, 부부는 물론이고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모든 사람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허물을 덮어 주라 하니 무조건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옳을까요? 허물은 곧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상대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덮어 놓고 모른 체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 허물의 경중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랑의 권면이나 훈계, 책망 등 알맞은 방법으로 상대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들보를 다 빼낸 사람만이 남의 티를 지적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해도 사랑을 가지고 권면이나 책망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기꺼이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참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야고보서 5장 19~20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진리를 떠난 사람을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한다면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길이고 또한 그의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라 했으니 이 같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상대가 진리로 변화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고 이해해 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심으로 생명을 낳으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하는 생명이요, 영으로 살리는 생명이지요. 또한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찬란한 빛을 비춰 주는 생명입니다.

예를 들어, 허물 많던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을 때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버리겠다는 마음이었지요(요 13:37 ; 눅 22:33).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과는 달리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요 13:38).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지요.

얼마 후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뛰쳐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떠올렸습니다.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반석 위에 네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자신이 주를 부인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부의 말씀만 해 주신 일들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베드로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감당치 못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또다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베드로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데 대한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더한 죄 가운데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베드로를 구해 내신 것입니다. 이미 지은 죄를 사해 주는 것은 물론, 더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지요. 이 일은 예수님께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극치를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으로서 제자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이러한 사랑으로 이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대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은 강하고 확실하게 상대의 마음을 감동케 하며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서 허물을 발견했다면 먼저는 요셉처럼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노아의 두 아들처럼 상대의 허물을 보지 않고 덮어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지혜롭고 선한 말로 권면하거나 책망해 상대를 감동시키며 진리로 변화되도록 이끌어 줘야 하지요.

그리하여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복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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