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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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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기획특집_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공의가 정오의 빛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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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1일 일요일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순수한 복음의 진수를 전하며 불같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 세계 만민을 깨우고 있는 사랑과 권능의 목회자.

1982년 장년 9명과 어린이 4명이 모여 시작된 만민중앙교회를 성령의 역사 속에 전 세계 1만여 지·협력 교회와 함께 사역하는 초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신 후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입증하신 것처럼 이재록 목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권능을 통해 성경이 참된 진리임을 확증하고 있다.

2000년부터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에스토니아 등에서 대규모 연합집회 부흥사로 활발하게 사역해 왔으며 집회 시 폭발적인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 CNN에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2009 이스라엘 연합대성회'는 220여 개국에 중계됐고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지금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마지막 때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뤄 드리고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고 있다. www.drlee.or.kr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6)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하라고 하면 '사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사랑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얼마나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다면 진정 사랑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사랑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계실까요?


1.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사랑과 공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습니다. 이때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만 알고 공의를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만 알고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분으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때 참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주인으로서 유일한 심판주가 되십니다. 이러한 권세를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영계의 법칙을 준행하시는 분입니다.

영계의 법칙 중에서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내용들을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하라, 지키라, 버리라, 하지 말라̓는 말씀들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역사하시며 이것이 사람들에게 ̒공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의의 기본 원칙은 간단히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마음에 품은 생각, 말과 행동 하나까지도 다 포함됩니다. 어떠한 것이든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으로 거두고, 선한 것으로 심으면 선으로 거두게 된다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은 곧 죄를 심으면 사망으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에 대해서는 마지막 심판 때에 사망이라는 판결을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비진리에 속한 생각이나 언행을 하지 말아야 하지요. 사람의 말과 행동은 물론, 모든 생각과 마음에 품는 것까지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12장 36절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하신 것을 명심해 오직 진리의 말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며 입술에 나오는 모든 말을 듣고 계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는 이 땅에서든 아니면 심판 날에 가서든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공의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혹여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무섭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가요? 이는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보다는 공의에 따른 징계가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예컨대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경찰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경찰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니 오히려 든든하게 느끼지요. 그런데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혹시 어딘가에 경찰이 있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상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되(전 12:14)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입니다(히 11:6). 악을 행한 사람은 악을 행한 만큼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이 주어지지만,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행한 만큼 반드시 선과 축복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공의가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며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의에는 하나님 뜻대로 살기 원하고 진리를 좇고자 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느낍니다.

즉 공의 가운데 받는 징계나 연단도 결국은 나를 온전케 만들고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임을 깨달아 어둠에서 떠나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잠언 3장 12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징계를 통해서라도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로 이끄시는 것이지요.


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다윗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 버리지 못한 죄성이 있어 밧세바라는 여인을 취하고 이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그 남편인 우리아를 적군의 손에 죽게 만듭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징계와 함께 혹독한 연단을 받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인 다윗까지 죽이려 한 것이지요.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성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셔서 남아 있는 죄성까지라도 완전히 뽑아낼 수 있도록 징계와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합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크신 축복을 넘치게 부어 주셨습니다.

반면 아버지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은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노새를 타고 도망하다가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공중에 매달린 채 요압 장군의 창에 찔려 죽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되 결국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해 주시기 위한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는 진리 안에 살고자 하며 설령 예전에는 죄 가운데 있었다 해도 이제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는 양약이 되고 축복으로 임합니다. 반대로 죄 가운데 거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한 심판의 판결이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 까닭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면 선악의 결과에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니 누가 선을 행하고자 하겠으며 선을 행한다 해도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전도서 12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니 반드시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선과 진리대로 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4. 공의를 정오의 빛에 비유하신 이유

정오의 빛은 하루 중에 가장 밝히 비추는 빛입니다. 깊은 산 속에 있다 해도,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있다 해도 중천에 떠 있는 태양에서 발하는 정오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정오의 빛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며 매우 밝게 빛나므로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시편 37편 6절에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정오의 빛같이 밝히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악에서 떠난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악을 행한다면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어긴 것이 됩니다.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볼 때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명백히 공의의 법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모세를 택하시고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장정만 해도 60만 명이 넘는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해 가나안까지 인도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지도자가 필요했지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40년 광야생활 동안에 수많은 불순종과 원망, 불평을 하며 때로는 대적해 오기도 하는 백성을 오래 참으며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자신을 닮은 모세를 보실 때 마음이 매우 흐뭇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치 않으셨습니다. 백성 중에 고라라는 인물을 비롯해 한 무리가 반역을 일으키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땅이 그 입을 열어 삼키는 무서운 재앙으로 멸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해 진노하신 것은 결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함으로 공의를 굽게 하려고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기 위함이지요. 또한 이를 통해 백성에게 교훈을 삼게 하시고 다시금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닫고 더욱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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