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세기 7:1~5)
최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함으로 인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노아의 방주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폭우가 내리치며 거센 풍랑 이는 바다에서도 안전했지요. 이는 노아의 방주가 하나님께서 친히 알려 주신 설계의 비율대로 건조됐기 때문입니다.
방주의 규모는 길이 약 150미터, 너비 약 25미터, 높이 약 15미터이며(창 6:15), 길이 150미터는 너비의 6배, 높이의 10배입니다. (너비 × 6) = 길이 = (높이 × 10) 이 비율은 근대의 선박공학자들이 알아낸 대형선박 안전 표준 설계 비율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영적으로 '방주'는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하나님 말씀 안에만 거한다면 어떤 시련이 몰려와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1.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창세기 7장부터는 대홍수 심판이 시작됩니다. 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비를 내리시기 전 노아에게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대홍수 심판에서 구원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셨지요.
그 당시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기 보기에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은 노아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노아는 자기 자신이 구원받음은 물론, 그의 가족도 함께 구원받는 축복을 받았지요. 또한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하나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음으로 받은 축복이 또 있습니다. 대홍수 심판이 시작될 때 지구를 두르고 있던 창조의 근본의 빛이 완전히 거두어졌지만 노아는 여전히 그 빛으로 둘린 공간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중에도 노아의 방주를 근본의 빛으로 둘러 주셨지요. 그래서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습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에 더 태워야 할 짐승의 종류와 수량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장 19절에서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에 태우라 하신 것은 '그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종족 보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모든 짐승의 암수 한 쌍씩을 방주에 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존케 하려고 택하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근본의 소리에 이끌려 방주로 나오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창세기 7장 2~3절에서는 특정 동물들을 지명해 암수 일곱씩 또는 암수 둘씩을 태우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방주에 더 태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노아가 택해 취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인간 경작을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지요. 또한 노아처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2. '칠일'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 공의를 온전케 하시는 사랑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홍수 심판이 앞으로 '칠일 후'에 일어난다는 뜻이지요. 역으로 심판의 순간까지 아직 '칠일'이 남아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이 있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음으로 결국 홍수 심판에 이르고 말았지요. 심판을 취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칠일'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완전수인 '7'만큼의 날을 더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왜 하나님의 공의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칠일은 누군가 돌이켜 구원의 방주에 탈 마음이 있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유예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주셨음에도 이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칠일'이란 시간은 하나님 편에서 홍수 심판을 이루시기까지 공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것을 따져보셨고 하나하나를 점검해 보셨는지, 얼마나 섬세하게 두루 살피시며 철저히 점검하셨는지를 나타냅니다.
한편, 5절을 보면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아 편에서도 홍수 심판을 위한 대비가 전혀 부족됨 없이 어떤 실수도 없이 이뤄졌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에스겔 18장 23절에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성경을 보면 죄악이 쌓이고 쌓여서 심판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그중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자가 있는지 살피셨고, 최후의 순간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에도 친히 천사장들을 보내어 그 성읍을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롯과 그의 가족이 구원받도록 급박한 상황에서도 심판을 늦추셨지요.
니느웨 성을 심판하려 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지요.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적대국입니다.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돼 공의로는 멸망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에게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를 보내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게 하셨지요. 이는 심판의 선포와 함께 '40일'이라는 유예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이 죄악에서 돌이킬 시간, 멸망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죄악에서 돌이킬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지요. 다행히 니느웨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왕을 비롯해 모든 신하와 백성이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어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의와 사랑 가운데 심판을 내리기도 하시고 내리려했던 심판을 거두기도 하십니다. 노아의 때 홍수 심판 전에 주신 7일이라는 유예 기간은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케 하시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의 방주로 나오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이때 중요한 것은 홍수가 있기 7일 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 선택받은 짐승 모두를 방주 안에 들어가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게 하셨지요. 따라서 그 7일 동안 노아는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이제 곧 홍수 심판이 시작된다."고 외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7일이라는 유예 기간은 주시면서 더 이상 심판을 경고하지 않으셨을까요? 또 노아로 하여금 왜 마지막 순간까지 방주의 문을 열어 놓게 하신 것이 아니라 문을 닫게 하신 것일까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은 인간 경작의 섭리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축소판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6~2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하셨지요. 노아는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을 안 때로부터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비난했지요.
'인자의 때' 곧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을 통해 때가 임박함을 부지런히 알려 주십니다. 이런 외침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며 죄를 회개하는 이들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세상에 취해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대시하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마지막 때가 될수록 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때가 되면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시고 믿는 사람들은 휴거돼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요.
반면 이 땅에는 7년 대환난이 시작됩니다. 그때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아예 주님을 믿지 않았거나 믿는다고 했지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전혀 갖지 못한 경우이지요.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휴거 사건을 보고 정신을 차리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성경이 참임을 깨닫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지요. 이런 이들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려면 어떤 고문과 위협을 받는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령도 이미 거두어졌기에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신앙을 지켜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라도 구원받을 이들이 있음을 아시기에 7년 환난이라는 기간을 허락하십니다. 공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는 것이지요.
홍수 심판 전 7일의 유예 기간이 바로 '7년 환난'의 의미와 같습니다. 홍수 심판 7일 전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것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간 것과 같지요. 또한 7년 환난 기간에 이삭줍기 구원이 있듯이 방주의 문이 닫혔다 해도 홍수 시작 전 누구라도 문을 두드린다면 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 중 누구 하나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방주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7년 환난 때도 이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회개하지만 믿는 자들에게 엄청난 핍박이 가해지면 대부분이 배교를 하지요. 끝까지 신앙을 지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이처럼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은 인간 경작의 마지막 때와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11장 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가족이 노아 말을 듣고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믿음에서 나온 행함이었습니다. 결국 이 '믿음'이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만일 노아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노아가 전한 말을 듣고 믿으므로 방주 안에 들어오려 했다면 하나님께서 "너는 안 돼." 하고 막으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누구만 구원받는다고 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는 열심히 전했으되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므로 노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듣고서도 무시해 버렸지요. 그 결과, 멸망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지만 순수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 또한 교회에는 나오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사람도 많지요. 입술로는 "믿습니다." 고백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해 취하는 사람은 사실 방주에 타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진정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방주 안 곧 하나님 말씀 안으로 들어와서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행함을 보일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구원의 방주를 타고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