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16)
당회장 이재록 목사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무렵, 독일의 한 유대인 수용소에 연합군이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애타는 마음으로 생존자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수용자들은 모두 가스실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용소를 점검하던 군인이 한쪽 벽 구석진 곳에 써 있던 글씨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숙연해졌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다 기록할 수 없네."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제 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한 수감자가 기록한 것이겠지요.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고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참혹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그가 벽에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사랑을 마음에 새기는 자가 되어 어떤 순간이나 상황에서도 마음에 고백하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지극히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죄와 불법에 빠져 사망으로 가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므로 결국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지요.
자녀를 낳고 길러보신 부모님들은 조금이나마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한 아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분이 있겠는지요? 큰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고 무슨 소원이든 들어 줄 테니까 네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면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살인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대신해서 아들을 내 놓으라." 하면 대부분 "말도 안 된다." 하겠지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미움, 혈기, 간음, 시기, 투기, 방탕함 등과 같은 죄로 추악한 우리를 대신해 참혹한 처형을 당하기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 처형의 순간, 하나님께서 받으신 고통은 하늘의 해조차 빛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땅에는 지진이 일어나 진동하고 바위가 터질 정도였지요.
그런 슬픔을 참고 아들을 내어 주시면서 죄인 된 우리에게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히 우리의 입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지요. 우리는 이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새기고 또 새김으로 영원히 감사의 찬송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2. 참 생명을 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려 하셔도 만약 주님께서 순종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가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인생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엄청난 희생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피조물인 사람들이 침 뱉고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지요.
죄악에 물든 인생들을 주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당장에 하늘에서 불을 내리실 수도 있고 천군을 보내 진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생들을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세상 죄를 지고 속죄 제물이 돼 주시고자 모든 고난을 기꺼이 받으셨지요.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질병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심으로 우리는 천국의 좋은 면류관을 얻게 됐고, 손발에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지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영혼들을 바라보시던 그 피 묻은 얼굴과 사랑의 눈빛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옥에서 건져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이에 더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런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을 믿고 진리 안에 행할 때 그 행함대로 천국의 처소가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사랑을 믿고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지요.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그 안에 생명이 없고 부활의 소망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경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 즉 악을 버리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자의 살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자의 피를 함께 마셔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배움과 동시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말이지요. 비유를 들면,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수분이 함께 공급돼야 우리 몸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설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을 배우면 반드시 그대로 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운 말씀이 자신에게 생명과 능력이 되어 마음에 있던 비진리가 점점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진리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을 보아도 인자의 살 뿐 아니라 인자의 피를 마셔야 우리 속에 생명이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지요. 여기서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 죄를 사하셨지만 그 피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응답받지 못했을 때 혹은 신앙으로 인해 핍박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지 않으시나 보다." 하고 불평하기도 하지요. 이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분이 결코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자 독생자를 희생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자녀들이 진리 안에 살 때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시지요. 영혼이 잘되는 사람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축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므로 기꺼이 생명을 주셨고, 천국에서 우리의 처소를 짓고 계십니다. 장차 천국에서 참 자녀들과 영원한 사랑을 나누실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어찌 다시 범죄할 수 있겠고, 또 천국의 영광을 믿는데 어찌 세상 것에 욕심을 내겠는지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그 사랑을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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