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간음'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부부간이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전에 간음은 아주 나쁜 죄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람의 양심이 무뎌지고 죄의식이 약해져 쉽게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해도 하나님의 자녀는 늘 깨어 있어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롬 13:12).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신 7계명에는 단순히 행위적인 간음을 금하신 것뿐만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1. 육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행위적인 간음에 대해 대표적인 육체의 일로서 구원조차 받지 못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갈 5:19~21).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물론 아직 진리를 잘 모르는 초신자라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할 기회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진리를 아는 사람이 이런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할 때는 회개의 영조차 받기 어렵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에는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이처럼 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 간의 일뿐만 아니라 짐승과 혹은 동성 간의 범죄에 대해서도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육체적인 죄들을 엄하게 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아 결코 세상 풍조를 좇아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 마음의 간음도 버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육체의 일들이 그런 것처럼 사람이 행함으로 범죄하기까지는 먼저 마음에 죄악을 품는 과정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미워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해를 입히며 마음에 분을 품기 때문에 혈기도 내듯이 마음에 음욕을 품을 때는 결국 행위적인 간음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음에만 품고 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요, 죄의 뿌리는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사람의 마음에서 간음을 버릴 수 없다. 버리고자 노력할 뿐이다."라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비록 사람으로서는 못해도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능력을 받으면 마음의 죄성도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까지 사하시고자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도와주시므로 마음에서 죄성을 뽑아버리면 아예 비진리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죄를 버리는 과정에서는 같은 죄성이 계속 나오는 것 같지만 말씀을 믿고 순종해 죄악을 버리고자 한다면 결코 똑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양파 껍질을 벗겨도 다시 비슷한 속껍질이 나오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변화되며 결국 온전히 성결될 것을 믿고 소망으로 달려가야 하지요.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 순간적으로 간음이 틈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간음했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갈 때가 문제이지요. 자신의 죄성을 깨닫는 즉시 회개하며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있도록 더욱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3. 영적인 간음을 해서는 안됩니다
육체의 간음과 마음의 간음은 육적인 의미의 간음입니다. 이런 육적인 간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영적인 간음이지요.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5~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믿음이 있다 해도 탐심을 버리지 않으면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탐심이 있으면 영적으로 우상 숭배를 낳고 더 나아가 영적인 간음이 됩니다.
그러면 7계명의 '영적인 간음'과 2계명에 나오는 '우상 숭배'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는 경우가 육적인 의미의 우상이라면, 하나님을 믿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해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는 영적인 의미의 우상입니다.
초신자 때는 믿음이 약하므로 하나님보다 돈이나 명예, 가족을 더 사랑하는데 이것이 영적인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성경이 참이요,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지요. 이렇게 분명한 믿음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 어둠에 속한 것들을 취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며 영적인 간음이 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 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서로 마음 다해 사랑하기로 언약한 부부와 같은 관계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일이 많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여 주신 하나님을 잘 알았지만 자기 욕심에 따라 미혹되니 이방인들의 우상을 받아들이고 섬긴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가 영적인 간음입니다(대상 5:25).
한 예로, 북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으로 간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멸망 당했는데 남 유다 역시 이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을 섬겼습니다(렘 3:8). 이렇게 간음죄를 범한 이스라엘은 결국 이방인들의 칼에 멸망했습니다.
오늘날의 경우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신부입니다(고후 11:2). 그런데 주를 믿고 성령을 받아 주님을 '나의 신랑'이라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며 비진리와 타협한다면 이는 곧 영적인 간음이 됩니다(약 4:4). 주님을 배신하고 간음한 사람을 주님의 신부라고 할 수 없으며 장차 주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간음이 육적인 간음보다 더 무서운 죄'라고 한 것입니다. 예컨대, 동생이 형에게 욕하고 침을 뱉었다면 그나마 회개할 때 용서해 줄 여지가 조금은 있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는 너무 패륜적이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간음이 한계를 넘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며 하나님과 멀어지니 세상에 더 물들고 주님을 현저히 못 박는 죄들을 범함으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히 6장, 10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적인 간음은 물론 영적인 간음과도 전혀 상관없이 오직 진리만 사모해 마음에 채워나감으로 흠도 점도 없는 온전한 주님의 신부가 되어 기쁨으로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