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움이 보이지 않아도 아주 밝은 빛이 비추이면 미세한 먼지나 얼룩까지 드러납니다. 이처럼 진실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다면 거짓 증거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행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말하거나 행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
재판에서는 증인의 말이 직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줍니다. 거짓 증언으로 무죄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 생사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 증거가 얼마나 나쁜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재판입니다.
성경은 증언하는 사람이나 판결하는 사람 모두 신중해야 함을 말씀하지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정황을 바르게 분별해야 할 것과 거짓 증언을 한 사람도 형벌을 받도록 하라고 했습니다(신 19:15~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생활 속에서 사소한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작은 거짓말은 물론이고, 사실을 말해야 할 상황에서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된 행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신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이 애매히 누명 쓰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든가, 실제 금액보다 많은 거스름돈을 받고도 아무 말이 없다면 정직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짓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이 정직해 말과 행실이 참되고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상대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식사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상대가 마음 쓰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안 먹었는데도 "먹었다."고 답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때에는 "먹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경우가 나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들에 숨겼으면서도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다윗이 형들을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온전하지 않지만 요나단에게는 다윗을 살리고자 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선한 의도로 말할 때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했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르면 하얀 거짓말을 안 해도 그 상황을 피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으니 정직한 마음을 이루고 하늘의 지혜를 받아 덕스럽고 은혜로운 말을 해야겠습니다.
2. 자신의 생각과 느낌 속에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경우
다른 사람의 말을 더하거나 빼서 엉뚱하게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나마 좋게 전한다면 다행이지만 나쁘게 전해 오해를 빚으니 문제입니다. 글자 하나까지 그대로 전했다고 해도 억양이나 장단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요.
예컨대, 똑같이 "왜 그래?" 하는 것도 걱정스럽게 말하는 억양이 다르고, 화가 나서 따지듯이 말하는 억양이 다릅니다. 물론 녹음기처럼 상대의 말을 똑같이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정확하게 전한다 해도 은혜와 덕이 되지 않고 진리가 아닌 말이라면 전하지 않아야 하지요. 좋은 의도에서 전했다 해도 듣는 사람 편에서 마음이 상한다면 사람들을 이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은혜롭고 덕이 되는 말을 해 의롭다 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자기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경우
사람들은 남의 표정과 행동을 보거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마음이나 의도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눈이 나쁘거나 딴 생각을 하며 못보고 지나쳤는데 상대는 '모른 척한다. 나에게 감정이 있나?' 생각합니다.
아무리 눈치 빠른 사람이나 서로 사랑하고 친한 사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를 오해하고 판단함으로 감정을 품거나 비방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상대의 마음과 달리 자신의 판단에 맞춰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는 것은 결국 거짓 증거입니다. 여기에 동조하고 판단한다면 이 역시 거짓 증거에 동참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지요.
육의 사람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악을 발했다면 다른 사람도 동일한 상황에 자신과 같은 악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이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상대가 속인다고 의심하며,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상대가 무시한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말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큰 악을 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마 7:1~5). 자기 악을 버리고 성결될 때라야 다른 사람의 잘못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악을 다 벗어 버리면 상대의 허물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것을 보기 원하며 상대에게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려고 하지요.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했습니다.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곧 재판장이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큰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동원해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는 말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한계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으니 하나님 말씀에 대해 사람의 생각을 동원해 "잘못됐다."라고 판단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아니되지요.
사람들은 악의가 없이도 사소한 거짓말을 종종 합니다. 예를 들어,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우이지요. 음식을 많이 먹은 것을 보고 "다 먹었다." 하거나, 조금 남은 음식을 보고 "하나도 안 남았다." 하는 것입니다. 혹은 두세 사람의 의견을 '모두'라고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는 숫자를 사실과 다르게 허위보고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고의가 아니라 해도 결국 거짓말이 됩니다. 때로는 남의 말을 전할 때, 자신의 생각에 맞춰 엉뚱하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지요. 한 예로 "상이 초라하네."라고 말한 것을 "고기반찬이 없다."고 했다며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은 사소할 수 있고 거짓말도 아니지만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지요.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사람은 오직 아는 대로만 말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해 사실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소하게 보이는 것도 자신의 말에 진실성이 결여됐다면 이는 곧 거짓의 속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짓의 뿌리를 다 뽑지 못한 사람은 어떤 긴박한 상황을 만나면 남을 해롭게 하는 거짓말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소한 것도 발견하는 대로 버림으로 온전케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이 없는 정결한 마음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밝히 비추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며 삶 가운데 좋은 것을 아낌없이 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시 8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