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가복음 14:32~36)
당회장 이재록 목사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을 한 주 앞둔 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 하며, 그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호산나' 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데리고 나타난 대제사장의 하속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온갖 고난과 조롱을 당하신 후, 마침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없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지는 않으셨을거야."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로마 군병들이 가시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울 때 파고드는 가시의 찔림도 그대로 느끼셨고, 날카로운 조각이 촘촘히 박혀 있고 끝부분에는 예리한 갈고리가 달려 있는 채찍으로 맞으실 때는 살점까지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런 채찍으로 많이 맞으셨으니, 예수님께서 느끼신 고통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온몸이 피로 붉게 물들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빠졌습니다.
채찍에 맞으신 후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 양손과 양발을 십자가에 못박힌 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스란히 모든 고통을 당하셨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명까지 내주시면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는 많은 영혼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고통이 더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안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연단을 받는다 해도 "힘들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받은 고난과 고통에 비한다면 견딜 만한 것이니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예수님께서도 이 길을 가셨으니 나도 승리하며 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 속에 연단을 이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때의 심정
마가복음 14장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시며 거리를 두고 떨어져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시기 전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육의 사람처럼 괴롭고 슬픈 감정을 토로하신 것이 아니라 다음 날 실제로 있을 십자가 처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십자가 처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가능하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만감이 교차하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은 섭리를 생각하셨지요. 또한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이 애틋하게 느껴지셨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께서는 많은 일이 생각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처럼 많은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고 직접 느끼시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피조물들에 대한 생각으로 몹시 마음이 아프셨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시 심정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된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은 영의 마음을 이루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처럼 표현하시는지 마음에 감동으로 느끼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부정적인 고백을 하셨을까?' 하며 육신의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며 마음을 영으로 일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나 예배 중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말씀을 듣고 나아가 판단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영의 마음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상대의 말이나 단어 표현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말 속에 담긴 마음을 느끼며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그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마가복음 14장 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인자로서는 쉽지 않지만 오직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처럼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떤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신뢰가 있으셨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육으로는 부끄러움이지만, 영으로는 지옥에 갈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입니다.
이와 달리 많은 성도가 연단을 받을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내게 왜 이런 연단을 주십니까? 연단이 너무 힘드니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기도입니다. 정녕 믿음이 있다면 원망이나 탄식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연단이 왔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그 이유를 먼저 찾게 됩니다.
때로는 어떤 죄를 짓거나 영적인 잠에 빠질 때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만일 이럴 때 "어차피 받아야 할 연단이라면 받겠지만 더 큰 시험은 막아 주시고 이 연단도 빨리 지나가게 하옵소서." 기도한다면 이 또한 온전히 선한 기도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연단을 받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힘듦을 면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기도는 아름다운 선의 고백, 진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마음 중심에서부터 연단을 주심에 감사하고, 정녕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연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해도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 온전한 변화를 위해 간절히 구하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예수님처럼 마음 중심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실 수 있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