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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후 12: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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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온전한 선을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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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3일 일요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일서 1:5)








당회장 이재록 목사


일반적으로 자기 감정을 눌러 참는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온전한 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악한 상대로 인해 어떤 불편한 감정도 생기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선한 말과 행함으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원하시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점검해야 할까요?


1. '내가 상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 마음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했습니다. 영은 살리는 것으로, 상대에게 힘을 주어 충만케 함으로 변화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으로 낙인 찍힌 간음한 여인도, 스승을 팔아 버리고 배신할 가룟 유다도, 사사건건 시시비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살릴 길을 열어 주고자 하셨지요. 이것이 선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반면에 선하지 않은 사람은 상한 갈대는 보기 싫다고 꺾어버리고, 꺼져가는 심지는 연기와 그을음을 없애려고 꺼버립니다. 즉 "내가 옳다." 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나와 다른 의견은 무시하고 누르고자 하지요.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 내 주장을 앞세워 상대를 누르고자 하지는 않는지요? 예를 들어, 회의를 진행하는데 한 사람이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저 사람은 사사건건 내 의견에 반대만 하네. 나를 무시하나?' 하고 불편해집니다. 그러면 혹여 상대의 의견을 잘 들어보지도 않고 단번에 잘라 끊으며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지는 않습니까?

또한 마음에 선을 이루지 못한 만큼 살리는 척하면서 짓누르려는 모습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서로 성품이 달라서 부딪히는 A와 B가 있는데, 어느 날 윗분이 A에게 "B는 잘 지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A가 기다렸다는 듯이 "안 그래도 B 때문에 안타까워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요즘 모임에도 자주 빠지고 사람들과 부딪혀 사람들이 힘들어하니 B를 좀 도와주세요."라며 답합니다. 자신이 부딪히면서 B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남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윗분이 B를 지적해 꺾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니 '나는 상대를 위해 걱정하며 선한 말을 했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과 행동이 상대를 살리고자 하는 선인지 아니면 상대를 꺾기 원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면서 내가 영광 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믿음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먹고 자는 것도 강건해 충성하기 위함이니 이런 중심일 때는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는 향으로 받아 주시지요.

반면에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지만, 중심은 자기 영광을 구하므로 하늘의 상급이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봉사하고 구제하며, 전도하고 영혼을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우리의 충성을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고 축복받으며, 부흥되면 그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에게도 영육 간에 축복이 임하지요. 이런 충성의 행함 속에 혹여 내 자랑과 영광을 구하는 마음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도 대상자가 있어서 열심히 기도와 금식을 하며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헌신적으로 해 그 영혼이 곧 교회로 인도될 상황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 대상자를 다른 사람이 교회에 등록시킨 것입니다. 이때 선한 마음이라면 '내가 저분을 전도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면서 자기 이름으로 가로채다니 참으로 뻔뻔하다.' 하며 감정을 내지 않습니다.

다른 예로, 구역장이 충성해 부흥도 하고 구역원의 믿음도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직이 개편돼 자신이 열심히 일궈 놓은 구역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됐습니다. 이때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들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자신이 담당했던 구역원들이 좋은 분을 만나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을 기대하며 후임자에게 잘 연결시키려 할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부흥시키고 관리해서 일꾼으로 키웠는데, 내 수고가 헛되구나. 내 구역이 좁아졌네.' 하고 서운해한다면 그만큼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지요.

이렇게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열심히 충성하다가도 어느 순간 변질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속히 드러나지 않거나 그 열매가 드러난다 해도 자신의 공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낙심하며 "지친다, 힘들다." 하면서 열정도 식어집니다. 따라서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해야 하나님께서 영원한 상급과 영광으로 갚아주실 수 있습니다.


3. '내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지, 아니면 상대가 나의 마음을 살피기를 바라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자연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힘쓰게 됩니다. 연약하고 문제 있는 양 떼에게 더 마음을 쓰며 간절히 기도하며 살피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충만함이 떨어지면 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질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나는 왜 축복의 열매가 없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틈타면서 점점 더 육신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히지요. '나는 그동안 남보다 열심히 충성했는데 아무도 몰라주네.' 하며 힘이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전에는 영혼들의 문제가 먼저였는데 이제는 내 연단과 어려움이 앞서지요.

'목사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시나? 다른 분이 연단 받으면 자주 심방하고 금식까지 하시더니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무관심하시네.' 합니다. 누구에게 잘하라는 권면을 받으면 '내 형편도 모르면서 찌르기만 한다.'며 상대에게 서운함만 품습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일꾼으로 충성하고 많은 선의 말씀을 듣고 배웠다 해도 그 선을 자기 것으로 이루지 않으면 연단을 받을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기보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섬겨 주기를 바라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신 것이 아니라 애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또 두고 가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셨지요.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더 먼저 보이는 마음,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도와주려는 마음, 바로 이러한 선의 마음을 사모하며 이룰 때라야 신속히 온 영의 열매로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악은 모양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온전한 빛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자녀들도 거룩하고 온전하길 원하시지요. 매 순간 자신의 마음과 입술, 행실을 점검함으로 신속히 영적 성장을 이뤄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선이나 자기 의와 틀 속에서 나온 육적인 선이 아니라 온전한 선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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