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후 1:14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최신 업데이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사랑의 주


11169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독교인들은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와 행복으로 마음이 부풉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도 사랑이었고,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도 생명 다한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랑을 주셨을까요?


1.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온전히 희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온 우주에 가득한 권능과 신성을 낮고 천한 피조물의 형상 안에 가두고, 사람들과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셨지요. 주리고 목 마르며 때로는 자거나 쉴 수도 없는 고단하고 가난한 삶을 우리를 위해 감당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러 나무 십자가를 지실 때도 모든 희생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인생들이 침 뱉고 조롱하며, 가시면류관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고통도, 몸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는 채찍질도, 손발에 못 박혀서 매달리는 참혹한 형벌도 예수님께서는 피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흉악한 죄인처럼 벌거벗긴 채 군중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수치도 마다하지 않으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고통을 받으셔야 할 이유도 없으시고 얼마든지 그 상황에서 벗어날 능력도 있으셨지요. 마음만 먹으신다면 당장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화려하고 빛난 모습으로 인생들 앞에 나타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열두 영 곧 열두 부대가 넘는 하늘의 군대를 동원해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멸하실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묵묵히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것은 이런 희생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행복하고 포근한 날입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그날에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애틋하셨을까요?

장차 드러날 주님의 영광도 잘 아시지만 그에 앞서 겪어야 할 십자가의 고난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33년간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도 곧 다가올 일들을 인해 시시각각 애처로우셨지요.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예수님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심히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로부터 외면당하는 아들도 슬프고 외롭지만, 힘이 있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큰 희생을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 주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고 결국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시면서 우리에게는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신의 재산도, 수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내가 고생하고 수고해서라도 내게 있는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자녀에게는 어찌하면 제일 좋은 것을 줄까? 어찌하면 최고의 인생을 살게 할까?' 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좋은 처소와 좋은 침대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이는 짐승보다 못한 죄인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을 구하지 않고 머리 둘 곳이 없이 돌아다니셨지요. 거칠고 허름한 옷을 입으셨고 때로는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시고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때로는 주무실 시간, 쉬실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여기 저기 다니신 것은 소망 없는 이들에게 어찌하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천국 소망을 심어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한 영혼이라도 더 질병과 연약함, 귀신들린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내 형상을 따라 지은 내 자녀들아 가난하지 말아라, 병들지 말아라.' 이런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다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영광도, 몸과 마음도, 시간과 소유도 다 주셨으며 결국 목숨까지 내어주셨지요.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께 외면당하실 때는 인류의 죄를 대신 감당하는 상황이었기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실 수조차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버지와의 친밀함조차 그 순간에는 포기하여 내어주시므로 우리에게는 죄 사함을 받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하면 부와 지혜와 명예, 모든 축복을 구하는 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최후로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해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지요.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누리게 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3. 주님의 사랑은 온전한 열매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했습니다.

흠 없으신 예수님의 희생은 수많은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성령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소욕을 따라 열심히 진리대로 행하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존귀한 자리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열매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만 누구나 참된 열매로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의 길을 걷던 사람이라도 가다가 멈추거나 다른 길로 벗어난다면 다시 주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만이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 있지요. 마음에 할례함으로 하나의 문만이 아니라 여러 문을 통과하여 결국은 새 예루살렘 성으로 침노해 들어가는 것입니다(계 2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몰랐을 때도 먼저 사랑하셨고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형벌 대신 영원한 천국을 예비해 주셨지요.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우리 마음의 소원과 모든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주님께서 주신 크신 사랑을 항상 기억하여 그 사랑에 보답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값진 열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