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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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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11629
2016년 5월 29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복음 2:11~1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천지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빌 2:6 ; 계 19:16). 그러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초라하게 구유에 누이시고 가난을 겪으셔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

누가복음 2장 1~7절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다가 아들을 낳은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몰려 거할 사관을 찾지 못해 짐승의 우리에서 해산해 아기를 구유에 눕혀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호화로운 왕궁이 아니라 누추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을 짐승에 비유하니 이상히 여길 수 있지만 사람의 악함을 보면 짐승보다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물질의 욕심 때문에 가족끼리 싸우고 고소하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니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린 채 세상 정욕과 자기 욕심에 따라 온갖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몸이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사람의 본분을 되찾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누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에서 벗어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말씀한 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 것이며, 사람의 본분을 되찾는 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이런 명령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공부해라." 당부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사람의 본분을 다해 축복된 삶을 영위하도록 알려 주시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섬세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길을 가신 이유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지만 일정한 거처도 없으셨지요. 이처럼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는데도 예수님께서 굳이 가난한 삶을 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에게 부요의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살아갈 때는 모든 것이 풍성했고 수고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담이 범죄한 후로는 사람과 함께 만물도 저주를 받아 땀 흘려 경작을 해야 식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7). 이처럼 모든 사람이 가난을 겪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한 저주이기에 예수님께서 가난을 대속해 주시고자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께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다는 수많은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삭이나 야곱, 요셉 등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에 순종한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풍성하고 부요한 삶을 누렸지요. 우리도 가난을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 속에 부요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욕심이 아닌 구제와 선교, 성전 건축 등 선한 일에 사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하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주기를 원하시지만(마 7:11) 무조건 "축복 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려면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을 뜻하지요.

신명기 28장 2절에도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씨를 심어야 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도 많이 심을 때 많이 거두며,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고후 9:6).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갑절 이상을 주시고 영혼이 잘된 만큼 30배, 60배, 혹은 100배로 갚아 주시지요.

그런데 여기서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둔다는 말은 단지 액수나 분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떤 중심으로 사랑과 믿음을 갖고 심었는지 그 중심의 향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차한 중에도 자기 소유의 전부와 같은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린 중심의 향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짐승의 구유에 누이시고 가난하게 살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사람의 본분을 되찾고, 구원과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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