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부활절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온전해지시기 바랍니다.
1.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나사로는 예수님을 심히 사랑해 붙좇았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 나사로가 병들어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 장사된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 오셨습니다.
슬픔에 젖은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고백합니다. 나사로가 살아 있었다면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침받았겠지만 이미 죽었기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죽은 나사로 때문에 우는 것을 보시고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의 육체는 순간에 회복되었고 그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의 입구에 나타났습니다.
이 영광의 순간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었으며, 이 부활의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 전역으로 전파되어 하나님께서는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원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또한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말씀하신 대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죄와 허물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셔야 했지요. 로마 군병의 채찍이 온몸을 휘감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오직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그 고통을 참으셔야 했고, 굵은 못이 손발을 관통하며 손가락만한 가시가 날카롭게 이마를 파고들 때도 우리를 위해 그 고통을 달게 받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피 흘리며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드리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며 주를 믿는 자는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에는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은 영이 살아나게 되는데, 이를 영적인 부활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후 무덤에 장사된 사람들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지요.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데, 이는 육적인 부활입니다.
3. 사도들처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모델을 보여 주셨고,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슬픔에 빠진 여인들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시자 제자들과 여인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참된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제야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이 믿어졌고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이 깨달아졌으며 영원한 생명, 천국의 영광을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도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지요.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의 마음도,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진 사도 요한의 마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확실한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돌에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약속으로 가득 찬 사도 바울에게는 낙심할 겨를이 없었지요.
이 외에도 수많은 성도가 배고픔과 목마름,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인해 오직 불같은 열정과 사자 같은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지요.
고린도전서 15장 19~20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처음 성령을 받고 구원받는 순간, 마치 나사로의 부활을 보고 환호한 마리아처럼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끝까지 붙잡고 승리하여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 우리는 영광스런 찬송이 온 하늘에 가득한 가운데 아름답고 빛나는 형상으로 바뀌어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위로해 주시고, 날마다 잔치를 열며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천국 집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싸워 버리며 힘든 연단 속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께서 상 주실 것을 믿고 달려가기에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굳게 붙은 가지가 되어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지요.
반대로 부활과 재림을 바라보는 소망이 작은 사람들은 연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세상으로 가거나 연단을 피하려 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말라버리듯그 생명이 끊어지므로 부활의 소망은 물론 재림의 소망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죽음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