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감사와 기쁨, 기도의 향은 얼마나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는 직분자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감사와 기쁨, 기도의 향이 곱고 진한 중심의 향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린다면 그만큼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는 참된 일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사심'은 '자기 욕심을 구하며 육적인 정을 좇으려 하는 마음'입니다.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은 물론,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내 의견과 취향을 고집하는 것도 사심이지요. 내가 대접받고 싶고, 더 누리고 싶고, 내 공적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사심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부름 받은 일꾼은 범사에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의 종이라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또 맡겨진 양 떼를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명예, 부모, 자녀, 내 재산, 내 시간, 내 취미 이런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밤낮 영혼들의 형편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지요. 직분을 받은 사람도 성도의 머리이니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품고 섬겨야 합니다. 내 배우자, 내 자녀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성도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요.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이 나옵니다. 수고를 넘치게 하고,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굶주리며, 춥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사연들을 구구절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니 힘들다 하거나 내 고생을 알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28~29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무수한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날마다 눌리는 것은 교회들에 대한 염려였지요. 성도들의 믿음이 연약한 것이 고통스럽고, 누구 하나라도 실족하는 것이 애탔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말씀한 대로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자랑은 다른 어떤 부귀영화나 명예, 권세가 아니라 주 안에서 맺은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3장 7절에는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궁핍과 환난을 당하던 중,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고 그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자 성도들로 인해 위로를 크게 받고 다시 달려갈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러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참된 일꾼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상대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사심이 없으면 당연히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합니다. 주님의 일꾼이라면서 자기 유익을 구해 어떤 일을 이루었다면,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오히려 낯이 뜨겁고 기도할 때도 민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상대의 유익이 아닌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옳다 해서 내 주장을 꺾지 않기도 하고, 믿음이 연약해 받지 못할 사람에게 내 믿음에 맞춰 강요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내가 머리다.' 하여 질서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섬겨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편함을 갖기도 합니다.
바로 이럴 때 화평이 깨지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속한 곳에서 화평이 깨진다면 무조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상대가 초신자라서, 육의 사람이라서, 무례하고 자기 유익을 구해서, 진리에서 멀어서 화평이 깨진다고 남의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머리이니 아랫사람이라면 당연히 섬겨야지. 어떻게 감히 내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 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머리이고 일꾼이니 오히려 먼저 상대를 섬기고 본이 되어 진리 안에서 화평을 이뤄가야 하지요.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많은 가축으로 인해 땅이 좁고, 이로 인해 조카 롯의 목자들과 자신의 목자들이 다투게 되자 즉시 화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가축을 분리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찾은 후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했지요. 롯이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못한다고 책망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고르라고 한다고 정말로 좋은 땅을 먼저 골라?' 하고 괘씸해하지도 않았지요.
그저 진심으로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좇아 주었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 해서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에 축복이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이룰 때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드러나며, 더 많은 영혼이 구원과 축복의 길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참된 일꾼이 되려면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하고 둘째, 상대의 유익을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심 없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항상 충만합니다. 중심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지요.
기도할 때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여 모든 것을 믿음으로 구할 수 있어 모든 분야에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빛의 열매, 사랑장과 성령의 열매, 팔복 같은 마음의 열매가 더 풍성히 맺혀 신속하게 주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사명 감당에 있어서도 분야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마음의 소원도 응답과 축복의 열매로 맺히게 되지요. 바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임하는 것입니다(요삼 1:2).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참된 일꾼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성도가 되어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그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으며 큰 영광 중에 거하실 수 있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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