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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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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예루살렘 안에서 죽는 삶


11297
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31~33)



어느 날, 예수님 앞에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하며 예루살렘을 떠날 것을 권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사람들의 죄와 불의를 책망한다는 소식을 듣자헤롯은 이미 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줄로 알고 두려워했지요(마 14:2).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여우'라 하시며 전할 말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난해구절이라 알려진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하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헤롯왕을 '여우'라 칭하신 이유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바리새인들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장 32절에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헤롯을 여우에 비유하셨을까요? 이미 세례 요한까지 죽인 헤롯왕이 이번에는 예수님까지 죽이려는 것이 마치 더럽고 악한 여우의 행동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도우시고 각색 병든 자와 연약한 자들을 치료해 주시며, 천국과 지옥, 심판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심으로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자 밤낮으로 애쓰셨습니다.

이처럼 오직 선한 일만 하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훼파하려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었기에 '여우'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우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제단들을 향해 오히려 잘못됐다 판단, 정죄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곧 여우와 같은 모습이지요. 혹여 말이나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여 주님으로부터 여우라는 말을 듣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2. '오늘과 내일' 그리고 '제삼일'이 가지는 영적인 의미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오늘과 내일'이란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일을 이뤄 가실 기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 속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 결코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또한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신다는 것을 예시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섭리와 부활을 믿고 주님과 연합한 사람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놓임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롬 6:23, 10:9).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어야만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해질 수 있기에 이를 가리켜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 길에 관한 모든 일은 만세 전에 하나님의 주관 아래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었고 예수님을 죽일 수도 없었습니다(요 19:11).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동안 어떠한 핍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으셨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자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던 것입니다.


3.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는 말씀의 의미와 교훈

33절에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핍박과 어려움을 이기시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며 가야 할 길을 오직 아멘으로 가셨기에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성경을 상고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 밖에 있던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이 있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로마에서 순교했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해외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이란 평화의 성이란 뜻으로, 이사야 52장 1절에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성으로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지요(사 2:3).

그러므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는 말씀은 결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다가 그 안에서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선지자라 하면서 예루살렘 밖, 즉 하나님의 말씀 밖에서 산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참선지자는 어떤 시험 환란이나 핍박이 오고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가 유혹한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되며 사나 죽으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는 선지자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말씀 안에 살아야 하고(요일 1:7), 그 안에 살게 되면 자연히 그 안에서 죽게 되지요. 살아 있던 자존심이 죽어지고 자신의 생각과 이론과 틀이 깨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처럼 말씀 안에 철저히 죽어지는 것이 예루살렘 안에서 죽는 삶이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다가 죽는 예루살렘 안에서의 죽음은 생명이요, 영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밖에 살다가 죽는 예루살렘 밖에서의 죽음은 영원한 사망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안에서 죽는 삶' 곧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죽어도 그 안에서 죽는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예루살렘 안에서 온전히 죽어지는 삶을 사심으로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세세토록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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