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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음을 이루려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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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0일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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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22)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국경제신문, 시사뉴스, 크리스챤신문 등에 신앙칼럼 정기 게재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참마음을 이루려면, 첫째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의 선을 이뤄야 하는데 먼저는 자신을 진리에 비춰 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는 큰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며, 상대를 믿고 신뢰하는 참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 지역장·조장·구역장 교육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서 경작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참마음이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하며,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참마음을 이루셨는지요? 자신이 만들어놓은 진리의 기준과 생각에는 참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입술로는 사랑한다 말하지만 행함은 사랑과 거리가 멀고, 선이라 생각하며 말하지만 그 안에는 시기와 질투, 판단 정죄가 담겨 있기도 하지요.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1. 자신을 진리에 비추어 보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1) 진리의 기준인 선의 단계와 잘못된 진리의 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차원은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선의 1단계는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는 않지만 감정을 속으로 눌러 참는 단계입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이것도 선하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선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차원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선하다'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선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깊은 선의 차원까지 마음에 이루어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말과 행동, 생각, 마음을 비추어 보아야 정확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마음에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요동함이 없으며 나에게 악을 행하고 해를 주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이나 악한 생각이 동원되지 않지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입니다.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감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이 나오는 차원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더 깊어지면 마침내 악한 자를 위해서도 자신의 생명을 줄 수 있는 차원에 이르는데, 바로 선의 4단계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기준에 솔직하게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기준에 맞추어 진리의 틀을 만들기 때문에 자신을 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진리의 틀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진리의 말씀을 지식으로 머리에만 담아서 자신이 이룬 만큼의 마음을 바탕으로 또 다른 진리의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진리의 틀을 많이 만들다 보면 자칫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지식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진리의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선에 대해 알고 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진리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런데 진리를 지식으로만 갖고 있으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비진리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거기에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 '저 사람은 충성하는 사람, 충성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판단하다 보니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은 인정하고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시하게 되지요. 중심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함만 가지고 결코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진리의 틀을 가진 사람은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문자적인 의미와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하나님의 깊은 뜻과 마음은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두루 살피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서 한쪽 면만 보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진리만을 가지고 옳다 주장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선의 차원으로 들어오려면 먼저 잘못된 진리의 틀부터 발견하여 깨뜨려야 합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에게 적용할 때 '자기'를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잘못된 진리의 틀이 깨어져 나가고 하나님의 마음과 선이 점점 더 깨달아지게 됩니다.
2) 자신의 마음을 점검할 수 있는 진리의 기준
첫 번째, 낙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는데, 기도도 충성도 별로 하지 않는 저 사람이 왜 나보다 인정받고 칭찬받지?' 합니다. 그러다 서운한 마음이 틈타고 결국 낙심해 버리지요. 자신이 충성한 것에 대한 보상이나 열매가 주어지지 않으면 낙망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하고 충성하며 사명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함도, 인정받거나 칭찬받기 위함도 아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하는 사람에게 이 땅에서도 그에 합당한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설령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어떤 축복으로 받지 못한다 해도 장차 하늘나라에서 반드시 상급으로 받습니다. 이것을 진정 믿고 소망한다면 혹여 자신이 충성한 만큼의 칭찬이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결코 서운해하거나 낙망할 것이 없지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행할 뿐입니다(눅 17:10).
만일 서운하고 낙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칭찬받고 인정받는 다른 사람에게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행악자나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도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시 37:1), 하물며 내가 행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한다 해서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애통에도 영적인 애통과 육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한 애통, 영혼을 위한 애통,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나 자기 악으로 인해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남과 비교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쉬워 애통합니다.
자기 악 속에서 하는 애통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 질투가 담겨 있고 하나님도 원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 악을 발견해 정녕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낮아져 철저히 통회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애통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진정한 변화로 나올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윗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먼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에게 좋은 것을 양보합니다(창 13:9). 주된 생업이 목축이었던 그 당시에 집안의 흥망이 결정될 수 있는 매주 중대한 결정임에도 선뜻 양보하지요.
이와 달리 자신의 유익 앞에서 그것을 지키고자 자기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심지어 궤계를 꾸미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각각 지체인(롬 12:5) 우리는 아브라함의 선한 마음을 닮아 서로를 아껴주고 양보하는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네 번째,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마음입니다. 양보는 자기에게 돌아올 유익을 포기하여 그 유익이 상대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것은 이런 양보의 차원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지요. 상대가 더 인정받고 칭찬받도록, 더 앞서가도록 자신을 희생하여 도와주는 마음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지 양보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유익을 구해 주고 상대가 잘되도록 도와주려고 하지요. 범사에 이런 마음을 좇는다면 그런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당연히 사랑받고 인정받게 됩니다. 다섯 번째,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높아질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 상대가 나보다 더 축복받을 때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함께한 일에 대해 상대만 인정받고 칭찬받을 때도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 바로 이런 마음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이루려면 시기, 질투, 미움 같은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남을 헤아리고 수군거리며 판단, 정죄하는 모습은 흔적도 없이 버려야 하지요. 더욱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보다 앞서고 인정받으며 칭찬받을 때 기뻐하는 마음이 되어야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2. 어떤 상황에도 큰마음을 가져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큰마음을 가진 사람은 설령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 해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연단 중에라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 사랑이 변함없기에 연단도 신속히 통과해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지요.
반면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요? 사소한 일에도 쉽게 요동하고 '이럴까, 저럴까' 왔다 갔다 합니다. 또 쉽게 삐치고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하고자 하는 일이 좌절됐을 때 서운해하고 낙망합니다.
상대를 품거나 포용하지 못하니 화평을 이루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려 하고 섬김 받기를 원하며,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쉽게 감정을 내고 더 나아가 무리에서 홀로 이탈하기도 합니다.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삐치고 서운해하지요. 설령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더라도 결국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보여 주었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요동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었지요.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신다 해도 조금의 서운함이나 오해가 없었지요.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는 마음이 곧 큰마음입니다. 변개하는 마음은 작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 그릇이 작으니 주변으로부터 조그마한 영향만 와도 이내 변개해 버리고 이유를 대지요. 이처럼 마음 그릇이 작으면 외부적인 작은 요인에도 쉽게 영향을 받지만,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주변 상황이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에 정한바를 변개함 없이 행해나갈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변개하는 원인은 바로 자신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진리가 임해 있는 진실한 사람은 자신에게 아무리 큰 유익이 온다 해도 변개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을 때 사울은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변질시켰습니다. 아말렉 왕을 살려서 잡아왔고 좋은 짐승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이유로 살려왔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그럴 듯하고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전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이란 명령이나 지시를 한 사람의 의도에 맞추어 정확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사심, 욕심, 거짓, 교만 등이 있으면 이 육의 속성 때문에 온전한 순종이 나오지 못하지요. 또는 자기 그릇 크기에 벅찬 일을 만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해놓고 자신은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순종하면 설령 자신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그 부족한 것을 채우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개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 유익을 좇아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 불순종하게 됩니다. 혹여 변개하지 않았다 해도 이후 마음에 갈등이나 미련, 아쉬움 같은 것이 있었다면 변개하는 속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참마음을 이루려면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혼자 다짐했던 작은 일이라도 신실하게 지켜 나가야 하지요. '이것쯤이야.' 하며 쉽게 변개하고 넘겼던 일들이 마음 안에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자라나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변개함이 없어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변개함이 없습니다. 신속히 자신을 발견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진실한 참마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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