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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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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참마음을 이루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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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7일 일요일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22)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국경제신문, 시사뉴스, 크리스챤신문 등에 신앙칼럼 정기 게재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참마음을 이루려면, 첫째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의 선을 이뤄야 하는데 먼저는 자신을 진리에 비춰 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는 큰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며, 상대를 믿고 신뢰하는 참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 지역장·조장·구역장 교육

지난 호에서는 우리가 참마음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자신을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마음을 이루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 보아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는 큰마음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지요.

이번 호에서는 참마음을 이루기 위한 두 번째 조건으로 참사랑을 이루어야 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사랑'만큼 많은 이야기의 주제가 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참사랑 역시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사랑은 거의 대부분 정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육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참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행함과 진실함이 따르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함으로 참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참사랑 곧 영적인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사랑은 악이 조금도 없고 흠과 티가 없는 깨끗한 사랑입니다.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사랑이지요. 그런데 영적인 사랑의 극치는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는 것입니다. 진정 상대를 사랑하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지요.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그 사랑이 변함없으며 기꺼이 감사함으로 순교에 이릅니다. 이렇게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드리지 못할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고 고백하지만, 막상 주님 앞에 '자기'를 다 드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요. '자존심' 하나 버리지 못해 사소한 일로 화평이 깨지는 일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1969년, 중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월드컵 진출을 놓고 축구 예선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 결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습니다. 워낙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들이기에 경기 최종 결과에 국가적인 자존심이 걸렸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당시 국경 분쟁 문제와 얽히면서 마침내 전쟁으로까지 발전해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은 4일 동안 2천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주변 국가들의 중재로 겨우 끝이 났습니다.

흔히 '축구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자존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되었지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일로 전쟁까지 일으킨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도 보면 자존심 하나 때문에 부모와 자녀 간에, 형제들 간에, 부부간에, 이웃과 친구 간에 등을 지고 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상대가 먼저 내미는 손마저 뿌리치지요. 이것이 다 자존심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저는 주님을 만난 이후, 하나님과 주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지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것은 버리라, 저것은 하지 말라." 말씀하시니 제게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아무리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이라도 주님께서 "아니라." 하시면 즉시로 버렸습니다.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도 없었고, 제가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다 해도 주님을 사랑하니 '자기'라고 하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물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누구와 걸릴 것이 없고 화평이 깨질 일도 없었지요.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면 버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다면 당연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게 되지요.

또한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했으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그들에게도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맡겨 주신 양 떼에게는 어찌해야겠습니까? 저는 주의 종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제 몸같이 사랑했습니다. 제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지요.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자신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습니다.

영혼들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했고, 그들을 위해 금식했으며, 어찌하든 가장 좋은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고자 몸과 마음을 다하며 생명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또한 양 떼들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변함없이 사랑해 왔습니다. 참사랑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안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며 감사할 줄 압니다.

누가복음 6장 32~33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할 수 있는 참사랑이 있다면 오히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까지도 선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내어주고 베푸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주머니가 넉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거나 돕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남을 먼저 도와주기란 쉽지 않지요.

교회 개척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구제를 해 오면서 제 주머니가 넉넉해서 구제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저에게 늘 부족함 없이 주시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늘 쓸 것을 아끼고, 먹을 것을 아껴서 모으고 또 모아야 하지요. 미리 많이 모아두거나 쌓아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제하며 심어왔습니다.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지요.

또한 제가 여러분을 어찌하든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려는 것도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새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다면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갈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제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해서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이유는 여러분을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제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해서라도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저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내어줄 것입니다.

모세 선지자와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주님의 심정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꼭 같이 새 예루살렘에 가서 영원토록 함께 살 그날을 소망하며, 저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만큼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사랑으로 맡겨 주신 영혼들을 대하시고, 무엇보다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사랑이며 참마음입니다.


2. 상대를 믿고 신뢰함으로 참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고 행함과 진실함이 따르는 참사랑은 서로 간의 신뢰가 기본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신다 해도 "아멘." 할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순종하지요. '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나? 무엇을 착각하셨나?' 이런 생각들은 일절 동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상에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100 % 신뢰했던 것을 봅니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어떤 이유를 대거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씨로 주신 이삭을 어떻게 짐승처럼 잡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까.' 하며 실행을 뒤로 미루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내와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100 % 순종하기 위함이었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100 %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부부 사이에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한다." 말하겠습니까? 서로가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도 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참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뿐 아니라 여러분도 하나님께로부터 온전히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큰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이처럼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참사랑을 신속히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마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마음과 참사랑을 이루어야 참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마음을 소유하면 위로부터 온전한 믿음이 주어지니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으며, 하나님 말씀에 100 % 순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같이 기도하면 권능이 따르고 아버지 하나님과도 밝히 교통하는 것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열매가 따릅니다. 건강의 열매, 회춘의 열매, 물질 축복의 열매 등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신속히 이루어 장차 만민이 펼쳐나갈 놀라운 사역에 동참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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