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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전 11: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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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온 영의 차원


11262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22)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온 영의 열매인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십니다. 참마음을 이루어 온전한 믿음이 될 때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온 것이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온 영으로 들어와도 하나님 마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100 %에 가까워야 합니다." - 기관장 교육 '온 영' 중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온 영의 열매로 나온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에 맞춰 온전히 행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며 지금까지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시지요. 결국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되어 그 마음을 우리 안에 담는 것이 온 영입니다(살전 5:23).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녀가 바로 온 영의 열매로 나온 참 자녀이지요. 이러한 자녀들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물론 온 영으로 들어와도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100 %에 가까워야 합니다. 그러면 온 영의 증거가 되는 세 가지 기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온 영의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해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리지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행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지요. 무엇을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향이 풍겨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 된 자녀에게는 당연히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존재 자체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항상 그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웠고, 단 한 순간도 그 뜻밖으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느끼기 위해 기도를 쌓아나갔습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생각까지도 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었지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쁨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에녹은 300년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유다서에 기록된 대로 에녹이 인간 경작의 마지막에 있을 주님의 재림에 대해 예언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더 가까이 두고 싶으셔서 산 채로 들어 올리셨습니다(창 5:21~24 ; 히 11:5).

영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이지만, 온 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차원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와 마음이 하나 되어야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준다면 그것은 자기만족에 그치고 맙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해 줄 수 있어야 이것이 진정 하나 된 관계이지요.

그러므로 영의 사람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순종하지만, 아직 하나님과 하나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온 영의 사람은 단순히 아는 만큼의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길 원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하길 원하시는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순복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낳게 해 주셨고, 그 아들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지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능히 죽은 자도 살리시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며,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히 11:17~19).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아멘." 할 때 중심에서 우러난 진실함과 정성이 담긴 참 순종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을 때도 아브라함은 멸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어찌하든 살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이미 죄악이 심히 관영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 근본 마음을 알았지요. '죄악이 관영해 그들을 심판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받아들이고 만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긍휼히 여길 조건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렸습니다.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소돔 성에 합당한 숫자의 의인이 있다면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공의에 맞게 구함으로 마침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시지 않겠다는 응답을 받아냅니다. 물론 소돔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했지만 아브라함은 겸비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끝까지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헤아려 그 마음에 흡족하게 구할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그 마음에 맞추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아버지 하나님의 선'입니다.

영의 사람은 선과 사랑과 진리의 지식을 채워나가는 만큼 온 영에 가까워집니다. 마침내 온 영으로 들어가게 되면 말과 행함, 표정 하나에서도 선한 향이 진하게 풍겨나지요.

단순히 범사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자신을 희생해서 상대를 섬깁니다. 남의 허물을 전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사랑으로 덮어 주지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상대를 봐도 불편한 마음이 없고 오히려 선으로 감동을 줍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 나오지요. 그런데 사람의 선과 하나님의 선은 다릅니다. 구제에 있어서도 가난하다고 무조건 구제하는 것이 아니지요. 술이나 도박에 돈을 탕진하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오히려 그를 더 죄악으로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요나의 경우처럼 하나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을 도와주면 같이 연단을 겪지요.

온 영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영적인 선과 육적인 선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으며, 선과 악을 진리로 분별하여 선으로 악을 분쇄시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참된 선이기 때문에 상대의 영혼을 위해 빛으로 어둠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사랑 자체이시며 긍휼과 자비가 한이 없으시지만 구약의 율법만을 보면 참으로 엄위하신 모습이지요. 어떤 죄에 대해서는 일말의 재고 없이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십니다. 죄로 인한 구원의 문제가 개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의 구원까지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온 영의 사람들이 때로는 매정해 보일 정도로 단호하게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인을 죽인 것도 그들을 용서해 준다고 해서 돌이켜 구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판 사람들이었지요. 더구나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이미 우상 숭배라는 가증한 죄에 심히 물들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어야 했기에 단호하게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반면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의 악행을 영적인 선으로 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지만 심히 불량해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며 제물을 가로채기도 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들을 엄히 징계하고 내쫓아서라도 악행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는 말로만 타일렀지요.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고 진노하셨고, 그들이 비참하게 죽는 등 가문 전체에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삼상 2:29~34).

가령, 어떤 성도가 죄를 지었다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도록 기도해 주며 허물을 덮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죄를 짓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권면하는 것이 선이요, 돌이켰을 때는 기억지도 말고 덮어주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상대가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 먼저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하셨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하셨지요.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셨습니다(마 18:15~17).

그런데 죄를 범한 사람이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이라 교회적인 문제가 된다면 상황은 다릅니다. 교회에서 그의 죄를 덮어준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결코 아니지요. 물론 먼저는 권면하여 철저히 회개시켜야 하지만, 그 죄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정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진정한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며, 악을 덮어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분쇄시키는 권세 있는 선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는 충성'입니다.

영의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상을 감당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변개함 없이 충성합니다. 수고한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되고 힘든 일을 맡아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충성하지요. 그런데 온 영의 사람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춰 이뤄드리기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0년이 넘은 뒤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율법에 능통했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심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위해 뛰어들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그릇이 되어 영적인 충성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먼저는 말씀 무장과 기도, 수많은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도록 역사하셨기에 사도 바울은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변함없이 성령의 역사를 따라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소아시아는 물론,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면서 결코 '지친다, 힘들다.' 하지 않았고, 파선하여 깊은 바다에 표류할 때도, 심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기쁨과 감사뿐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한 고초를 겪고 나서도 깨어나자마자 쉬지 않고 다음 사역지를 향해 떠났지요. 그 마음에 영혼 구원, 복음 전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어떤 사람은 처음 직분이나 사명을 맡았을 때, "생명을 다하리라." 할 정도로 열정이 뜨겁다가도 막상 어려움을 당하면 바울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연단에도 핑계대고 낙심하며 절망합니다(잠 24:10). 어떤 사람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책망을 받거나 열정적으로 노력해도 원하던 열매를 얻지 못하면 낙심해서 물러서며 더 이상 노력하기를 포기하지요.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내었다면 결코 그 마음은 식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인정받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고난을 겪는다 해도 상관없지요. 윗분에게 책망을 받거나 혹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전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예전에 해보지 않은 일이라도, 보기에는 어려운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 참된 충성입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일만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심 내는 것이 충성이지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기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성격으로는 차마 감당 못할 험한 일이라도 생명을 걸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게 할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 영의 사람은 자기 방식, 취향, 성품대로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그 마음과 뜻에 맞춰 충성합니다. 아무리 실력과 능력이 뛰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뜨거움으로 행한다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진정한 충성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온 영의 차원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뜻에만 맞춰 행할 때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 참된 충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선을 이루며 그 뜻에 맞춰 충성함으로 온 영의 열매로 나와 마지막 때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섭리를 이뤄 드리며,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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