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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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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사랑의 깊이


11022
2018년 7월 1일 일요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사랑의 깊은 차원까지 이뤄야 합니다.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참 자녀가 되는 길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참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 지역장‧조장‧구역장 교육 '사랑의 깊이' 중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서 경작을 시작하신 목적은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더 새롭고, 더 깊고, 더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의 깊은 차원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진실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일곱 단계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은 율법의 완성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은 총 613가지입니다. 이중에 '하라'는 법이 248개, '하지 말라'는 법이 365개이지요. 이것들을 축약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2장 35절 이하를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답하시지요.

이 말씀처럼 모든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되어 결국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설령 613가지 율법 조항을 모른다 해도 결국은 모두 실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만 있으면 될 텐데 왜 율법이 있어야 할까요?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요, 누군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할 때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계명, 곧 율법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진정 그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를 점검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지금부터는 사랑의 깊이를 점검해 볼 수 있도록 기준이 되는 일곱 가지 항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 사랑의 깊이를 점검하는 일곱 가지 기준

첫째, 용서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기본적으로 용서할 자를 능히 용서할 뿐 아니라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자도 용서하는 차원입니다. 남유다 므낫세 왕은 심히 악을 행해 하나님께서 거듭 경고하셨지만 귀 기울이지 않다가 결국 이방나라에 사로잡혀 갑니다. 그제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긍휼을 구하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요(대하 33:1~13). 북이스라엘 아합 왕도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실 때라야 비로소 낮아져 긍휼을 구합니다. 이런 아합 왕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왕상 21:17~29).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를 보면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할지를 여쭙자 예수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답하십니다. 7은 완전수로서 일흔 번에 일곱 번이란 무한대의 용서, 완전한 용서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인들을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눅 23:34) 대신해 죽으심으로써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중심에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용서하시되 한계가 없이 용서하시고, 한번 용서하셨으면 그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며 기록 자체를 없애 버리십니다(사 43:25 ; 시 103:12~14).

둘째, 살리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살린다'는 것은 '기회를 준다'는 뜻입니다. 다시 살 수 있는 바탕과 환경을 만들어 주며, 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투기하여 죽이고, 자신에게 임할 형벌이 두려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참 회개가 아닌 두려워서 죄를 시인하는 정도임에도 그를 용서하십니다. 이뿐 아니라 살 수 있는 길까지 보장해 주심으로 평생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결국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수 있게 역사해 주시지요.

예수님께서 잡히신 날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셨을 때 그의 허물을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그에게 영혼들을 부탁하시며 다시 수제자로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맡겨 주셨지요. 이에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힘과 마음을 다해 사역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합니다. 이처럼 지난 허물을 용서할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참사랑인 것입니다.

셋째, 참음의 단계입니다.

진리 안에서의 참음은 참기 어려운 것을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회개할 때까지, 변화될 때까지, 그래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참아 주는 것이지요. 빨리 회개하고 변화되라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내라고 밀어붙이고 다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함으로 인해 죽었다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영혼은 당장 도약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차근차근 진리로 채우며 쌓아가야 하지요.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이 다시 넘어뜨리려고 방해할 수도 있으니 싸워야 하고 다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연약함을 알아 신속히 변화되지 못하는 영혼도 선과 사랑으로 참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오면서 많은 오해와 비방,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개척 때부터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참아왔습니다(마 5:11~12). 때로는 성도 중에 사단에 미혹되어 다른 성도들을 시험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회개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제 편에서 먼저 포기하지 않았지요. 제가 모든 것을 참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기꺼이 참을 수 있었습니다(딤후 2:10).

넷째, 믿어 주는 단계입니다.

제가 어떠한 영혼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참아 줄 수 있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좋은 양 떼라 믿었고,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는 귀한 영혼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혹여 그 가운데 범죄하고 속이며 불순종한다 해도 포기한 적이 없지요. 밉거나 싫은 마음 자체도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변화될 것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여 낙심하기라도 하면 할 수 있다고 믿음의 고백을 해 주었지요. 하나님을 믿기에 아무리 허물이 많고 부족함이 많아도 믿어 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믿음의 근간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기에 상대를 믿어 줄 수 있지요. 진심으로 사랑해서 믿어 주었을 때, 또한 하나님 앞에 맡기는 마음으로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 믿음대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다섯째, 바라봐 주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바라봄'이란 상대의 단점이 아흔아홉 개요, 장점이 한 개라면 아흔아홉 개의 단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사랑하기에 한 개의 장점, 그 한 개의 선(善)이 넓혀질 것을 바라봐 주지요. 자녀를 양육할 때도 부모가 변함없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봐서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변화시켜 주십니다(히 11:1). 배우자나 부모를 전도할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의지하여 변화될 때까지 기도하면 결국 응답받을 수 있지요.

저는 교회 개척 후 마음밭, 성격, 배움, 교양 등 모든 것이 다른 영혼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새 예루살렘까지 함께 갈 영혼이라 믿고 그들의 장점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 장점을 잘 살리면 자연히 단점은 점차 버려지리라 믿었지요. 설령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영혼이라도 연단을 잘 통과하여 온전케 될 날을 기대하며, 그가 예전에 잘했던 일들을 대신 하나님께 아뢰어서라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울을 권능의 사도 바울로 바꾸셨습니다. 강한 성격은 핍박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복음을 대적했던 많은 지식은 복음을 정립할 수 있는 도구로,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핍박하는 열정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회를 개척하는 열정으로 바꾸어 주셨지요. 여러분도 어떤 영혼이든지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순간에도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의 눈으로, 몸과 마음에 연단받는 사람이라면 변화될 모습을 함께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섯째,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봐 준 상대가 변화의 열매로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해도 조급해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사랑의 차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큰 기대와 사랑의 마음으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지어 에덴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고, 그의 후손들은 급속히 죄로 물들어 갔습니다. 불과 1,600년이 흘렀을 때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정도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어 결국 하나님께서는 대홍수 심판을 단행하셔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 경작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는 않으셨습니다.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할 인간 경작을 통해 참 자녀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셨지요. 지금 또한 여전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벧후 3:8~9).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무수한 세월 동안 인생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셨으며 참고, 믿으며, 바라봐 주셨습니다. 열매가 기대보다 적다해도 조급해하지 않고 여전히 기다려 주시지요.

우리도 믿고 바라봐 준 영혼들이 변화의 열매로 나오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열심히 믿음도 심어 주고 말씀도 전해 주되 결과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지요(고전 3:6). 기다리는 세월 동안 상대로부터 욕을 먹거나 해를 입어도 한결같은 소망을 품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부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기대하며 또 기다려 주어야 하지요.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픔을 느끼셨지만 풍성히 맺힐 열매를 바라보시며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곱째, 눈물을 흘리는 단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의 세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노아의 대홍수 심판이 시작될 때도 하나님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인생들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으시고 다시 기대하며 기다리겠고 반드시 이루리라는 의지를 굳히셨지요.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주님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친히 인생들의 악을 대면하시면서 때때로 눈물을 흘리셔야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당하며 복음을 전할 제자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배신할 자를 위해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한 방울도 헛되이 사라지지 않으며 향으로 올라갑니다(시 56:8). 저도 영혼들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지내왔습니다. 악을 보고 울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자들을 보고 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사랑의 눈물이 반드시 증거가 되어 하나님 앞에 영화롭게 하는 그날을 바라보며 주 안에서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 주님과 하나 되려면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고 온전한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아픔과 처절한 슬픔을 겪는다 해도 사랑의 눈물로 중보하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알아감으로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여 장차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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