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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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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5일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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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16)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차원인 온 영(살전 5:23)의 완성을 이루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본 속성인 사랑과 공의를 이해하며 닮아가 사랑과 공의를 적절히 조화시켜 온전한 사랑의 완성을 이뤄야 합니다" - 기관장 교육 '사랑'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성도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까지도 이해하고 그 사랑을 마음에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믿음의 5단계에서도 깊은 차원입니다. 곧 온 영의 완성을 이룬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믿음의 분량』 책자 참조). 온 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을 바로 알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밝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과 공의가 어느 한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온전히 하나로 조화시켜야 합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이루는 것이지요. 곧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차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1. 하나님 차원의 '사랑'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여 나뉘어야 할 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먼저 그에게 좋은 땅을 고르게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유익보다는 상대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 주고, 자기가 양보하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주는 자체를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사랑이지요.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첫 번째 열매인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 위에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을 이룬 사람이라야 정녕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놓을 수 있고, 믿음의 형제를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선을 나타내 보일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사랑도 결국 사람 편에서의 최고일 뿐 하나님의 사랑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차원일까요?
1)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되 자신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것입니다(요일 4:16, 19 ; 롬 5:8).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원래 근본의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서 홀로 우주 모든 공간에 가득히 존재하셨습니다(출 3:14 ; 요 1:1 ;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고,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을 계획하십니다. 먼저는 스스로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면서 동시에 차원이 다른 '하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느헤미야 9장 6절에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말씀한 대로 하나의 하늘이 아닌 여러 개의 하늘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왕상 8:27 ; 시 68:33 ; 고후 12:2).
그 후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행 13:33 ; 히 5:5 ; 요 15:26 ; 갈 4:6).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지만 인간 경작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며, 역할은 다르지만 마음과 생각, 능력이 하나이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참조). 그리고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돕는 천사와 그룹 등 영적인 존재는 물론 참된 인간 경작을 위해 루시퍼라는 존재를 허락하셨고, 배신의 크나큰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루시퍼의 반란을 허락하셨지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루시퍼에게 큰 사랑을 주셨고, 배신하고 타락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다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인간 경작을 위해 공의 가운데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한계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아픔은 참으로 크셨지요(창 1:2).
이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로서 무한한 권세와 능력을 받아 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신하므로 또다시 배신의 아픔을 겪으셔야 했지요.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인간 경작이 시작되면서부터 참 자녀를 얻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와 헌신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 땅에서 경작이 시작되면서부터 인생들은 급속도로 죄에 물들어 갔지요.
이러한 인생들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더 큰 희생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바로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생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예수님은 물론, 성부 하나님께서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큰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희생을 감수하신 것은 그 '고통의 크기'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향한 사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피조물로부터 수없는 배신을 겪으시면서도 진노하여 다 멸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참고 또 참으시며 오히려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지요. 그러면서도 원하신 것은 오직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참 자녀로 나와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영광 가운데 세세토록 사는 것이었지요.
2) 끝까지 기회를 주며 더 좋은 것 주기 원하시는 사랑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들에게 나타난 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부터 가룟 유다가 배신할 자임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로 그를 부르셔서 예수님 곁에서 변화될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원하셨지요.
그 중심을 아신다 하여 차별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돈궤까지 믿고 맡겨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심지어 돈궤의 돈을 도적질하기에 이르렀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책망하시거나 떠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그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끝내 악을 선택했지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마음을 정한 후 최후의 만찬 자리에 나타나 여느 때처럼 함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가룟 유다 본인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시며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십니다(마 26:21~25).
가룟 유다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실 자신의 고통을 염려하신 것이 아니라 멸망으로 갈 그를 긍휼히 여겨 탄식하셨지요. 이처럼 주님의 사랑은 배신할 영혼이라도 그가 변화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만 있다면 많은 희생과 수고가 따른다 해도 끝까지 참고 믿어주며 견딥니다. 그럼에도 끝내 사망의 길로 간다 해도 미워하거나 서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안타깝고 긍휼히 여기지요.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상대의 영혼이 변화되기만을 바라는 마음, 여기에 그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미움이나 서운함을 품지 않고 더 나아가 끝까지 기회를 주며 더 좋은 것을 얻도록 길을 열어주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온 영의 완성을 위해 닮아야 할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입니다.
2. 사랑을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공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이듯이 '공의'도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 말씀했지요. '공의'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 또는 기준'으로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정하신 이 공의를 그대로 행하십니다.
시편 37편 6절 후반절에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말씀한 대로 정오의 태양이 중천에 떠 있으면 만천하가 그 빛에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니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게 되지요. 반면에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의가 오히려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처럼 여겨집니다.
1)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정하신 법칙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첫째 날,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시자 근본의 빛이 둘러짐으로써 피조물들 가운데 질서와 원칙들이 세워졌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1년에 한 번 공전한다'는 원칙이 세워진 것입니다. 지구뿐 아니라 앞으로 창조될 태양과 달과 다른 행성들, 그리고 무수한 별 사이의 질서와 원칙도 이 첫째 날에 세워졌지요. 이처럼 우주 공간뿐 아니라 지구상에도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가령,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0도 이하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는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순환한다' 등의 공의의 법칙이지요.
천지 창조 여섯째 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도 사람의 몸이 일정한 법칙대로 운영되도록 공의 가운데 질서와 원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음식을 먹어 에너지를 공급해야 활동하고 때를 따라 잠을 자 주어야 하며, 몸의 어떤 분야가 한계를 넘지 않도록 사용해야 하는 것' 등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지요. 그래서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육의 공의에 맞도록 살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2)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이루는 동안 필요한 공의
구원과 심판, 응답, 축복, 징계와 재앙 등은 인간 경작을 이루는 동안 필요한 공의입니다.
가령,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듯이 진리 안에서는 이러한 공의의 법칙들이 더욱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 16:18),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등 죄와 그 결과에 대한 공의의 법칙도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공의의 법칙 중에는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등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아는 만큼 응답과 축복을 받기 쉬우며 어떤 문제가 생겨도 쉽게 해결할 수 있지요. 공의는 마치 수학의 공식과도 같아서 어떤 일의 원인을 공의에 대입해 보면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의 결과를 공의에 대입해 보면 그 원인을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의의 법칙이라는 것이 직물의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영의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그 안에 담긴 법칙을 더 정확히 풀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살인해 법적으로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할 때 같은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그 당시의 마음과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이런 죄인의 마음 중심과 그의 처지와 사정까지 알아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사형을 면할 방법을 찾아줄 수도 있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공의를 적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사랑과 선의 차원이 깊으냐에 따라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의를 잘 아는 만큼 상대를 살릴 수 있는 길도 잘 찾아낼 수 있지요. 따라서 공의를 알기 위해서는 진리의 지식을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들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이해하여 마음에 담아야 하지요. 이 공의가 있어야 사랑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은 사랑 플러스 공의가 이루어질 때 율법을 완성하는 온전한 사랑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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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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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왜 침노를 당하는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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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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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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