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당해야만 했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이처럼 크신 사랑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 죄를 버리고 변화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원하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혼 구원의 사명을 맡은 분들은 이 사랑의 마음을 깊이 깨달을 뿐 아니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확장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마음을 이루어야 할까요?
첫째,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는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했지요.
사랑은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열 가지 단점이 있어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 장점을 인정하며 칭찬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것이 있으면 본받아 배우고자 하며 함께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어야 하지요. 그럴 때 상대가 중심으로 사랑하며 그 품에 깃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보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소자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았고, 상대에게 배울 점을 찾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지요. 만일 '내가 저보다 더 열심 내고, 나는 일꾼이니까' 하고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둘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해를 입고 죽을 지경이 되어 쓰러졌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외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제사 드리고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 했지만, 불쌍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사마리아인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 상처를 치료받도록 도와주고 치료비까지 지불하지요.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상대의 믿음에 맞추어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랑이 있어야 연약하고 힘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셨다 했습니다(히 4:15). 곧 우리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시며 우리 입장에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경, 귀머거리, 저는 자들을 보시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쳐 주셨고,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을 때는 홀로 남은 과부의 처지를 마음 아파하시며 아들을 살려 주셨지요. 때로는 예수님을 붙좇는 백성의 먹을 것까지 염려하셔서(막 8:3) 칠병이어 등의 역사로 먹을 것을 풍족히 주셨습니다. 이처럼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신 이유가 바로 영혼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은혜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공궤한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구제에 관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에게 '구제'는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였지요(갈 2:10).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를 세운 것도 구제를 잘 집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불쌍한 영혼을 긍휼히 여길 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친히 빚을 지신 것처럼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긍휼의 마음으로 주변에 선을 쌓는 것은 부흥의 열매를 내는 길일 뿐 아니라 각자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받고 빨리 변화될 수 있는 축복의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모든 것을 내어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참으로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유대, 갈릴리, 주변 이방 지역까지 부지런히 다니시며 분초를 아껴 복음을 전하셨지요. 영혼들이 몰려 들 때는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느라 잡수시고 주무실 시간도 부족하셨습니다.
이렇게 진액을 다해 3년을 보내시고도 내가 할 바를 다했다 하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생명까지 내어주셨고,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지요.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고 중보기도를 하시며 천국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주고, 또 내어주는 것이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며, 이 마음을 우리도 이루기 원하시지요.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습니다(살전 2:8). 저는 무수한 금식과 철야로 영적인 말씀을 풀이 받았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했지만 이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책임지며 어떤 경우에는 혹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금식하거나 화목제물을 힘껏 드리기도 하고, 눈물 뿌려 어찌하든 죄의 담을 헐고자 했지요.
영혼들이 범죄해 구원받지 못할 상황이 될 때 '진리로 가르쳤는데 저가 죄를 지었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 않았고, 목자로서 제 탓으로 돌리며 하나님 앞에 그 영혼을 위해 매달렸습니다.
양 떼 중에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는 경우도 있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삐치고 애매히 원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둠의 역사를 받고 육신의 생각에 빠져서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도 부정적인 말만 반복하는 경우도 있지요. 눈물로 권면하고 진리를 가르쳐도 여전히 세상을 끊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져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혼이라도 더욱 사랑하고 섬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며 섬긴 사랑의 행함이 큰 영광과 상급이 되며, 이 땅에서 부흥의 열매로 나올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과 영생, 천국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힘써 수고하고 헌신할 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게 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시지요.
이러한 소망 가운데 수많은 영혼을 살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큰 영광 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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