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일서 1:5)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거하지 않고 오직 빛 가운데 거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풀리며 각종 인생의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짙은 밤이라도 일단 태양이 떠오르면 어두움은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에게는 태양 앞에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과 축복이 임하며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도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빛과 어두움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한 우리가 어두움을 벗고 빛 가운데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빛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질병이나 사업터, 가정의 어떤 문제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각종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무엇보다 소중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이것이 참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누구든지 빛을 따라 나오기만 하면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빛은 영적으로 어두움이 전혀 없는 영원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빛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최고의 완벽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땅의 것으로 설명하고 나타내야 사람이 이해할 수 있기에 '빛'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2. 믿음, 선(善), 의(義), 영(靈), 빛과의 관계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배우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아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신앙 안에서의 믿음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인 믿음은 단지 성경 말씀을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으로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말합니다. 반면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말씀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서 산 믿음, 즉 행함이 따르는 참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즉 선 자체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으로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리고 오직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선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의'입니다.
여기서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믿음을 좇아 순종해 나가는 것'으로, 내 생각이나 경험, 내 지식에 맞지 않아도 진리를 좇아 오직 "아멘" 하고 좇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의를 행해야 하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가령, '용서하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아 처음에는 용서하다가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상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는 내 안에 변하는 속성, 곧 육이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의를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변치 않는 영이며, 이런 영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의의 행동도 바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롬 5:18).
그러므로 '의'가 사랑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결정체로 나오게 된 것이 '영'이며, 영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에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영의 모습이 모든 분야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을 때가 바로 '온 영'이며(살전 5:23), 온 영을 이루면 행하는 것마다 '빛'으로 나타납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지요. 즉 '영'이 내면적인 속성을 표현한 것이라면, '빛'은 이 내면적인 것이 밖으로 나타났을 때의 속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태양을 가리켜 "태양"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우리가 보는 것은 태양빛이지요. 즉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신 온전한 영이신데 이 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온 영의 단계에 이르러야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초신자라도 그 단계에 맞는 빛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착함이란 곧 '선'을 말하고, 의로움이란 선의 기준이 되는 '의'를 말하며, 진실함이란 곧 변함없는 '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에는 반드시 선이 나타나되 의의 행함이 변함없는 영의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직 영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사람에게 맞는 선의 단계의 모습이 의의 행함을 통해 나오지만, 육이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변할 여지가 있지요. 즉 "믿습니다" 하며 동일한 고백을 해도 각 사람마다 선과 의, 영과 빛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영의 단계에 이르면 상대를 감동시킬 만한 선이 변함없는 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내고, 온 영으로 이루면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선의 마음으로 믿음과 순종과 행함의 의를 변함없이 행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믿음과 순종과 행함의 의를 변함없이 행했습니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에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했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고,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을 만큼 온전한 선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셨고, 그의 행함은 오늘날 믿는 우리 모두에게 빛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3. 빛과 반대되는 어두움에 속한 것들
이와 같이 빛에 속한 것들이 있는 반면, 빛과 반대되는 어두움에 속한 것들도 있습니다. 어두움은 한 마디로 죄에 속한 모든 것이 해당됩니다. 곧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의로 여겨지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 것들이지요.
예를 들어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등의 육신의 일과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등과 같은 육체의 일들은 듣기만 해도 어두움이 느껴집니다. 반면 자기 보기에는 의로 여겨지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에 해당하는 것은 어두움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으로 비추면 반드시 어두움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며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지요(마 16:21~23).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만류하는 것이 스승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어두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46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영적인 사랑과 팔복, 그리고 성령의 열매 등의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4. 빛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
먼저, 어두움이 좋고 빛이 싫기 때문입니다(요3:19~20). 세상의 쾌락과 물질, 자기 유익을 좇아 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진리와 선을 좇으라는 빛의 말씀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생각에 가려 오해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착하게 살면 되지, 왜 꼭 교회에 나가야 구원받느냐"는 것이지요. 이들은 신은 인정하지만 '왜 자신이 죄인이며, 주를 영접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실족당한 경우입니다. 간혹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거짓되고 가식적이기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만이 참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과 상관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을 보고 마음 문을 닫아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믿음의 본이 되는 빛의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5.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약속하셨고, 또한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29).
빛이신 하나님께 나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질병이 떠나지 않고 사업터의 문제, 가정의 문제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인은 빛 가운데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빛 가운데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나오는 것과 빛에 거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빛으로 나왔다 해도 모두 빛에 거하는 것이 아니지요. 다시 어두움으로 되돌아간다면 이는 결코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미워하던 사람이 은혜를 받고 마음을 잠시 돌이켰다가 시간이 흘러 예전처럼 다시 미워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빛에 거한다 해도 온전한 빛의 차원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빛으로 가까이 나오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온전히 빛에 거할 때 요한일서 3장 21~22절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 축복의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거하지 않고 오직 빛 가운데 거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풀리며 각종 인생의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행할 뿐 아니라 온전히 빛 가운데 나와 빛의 열매를 맺으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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