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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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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빛이시라' 시리즈 5

12573
2018년 11월 18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9)



"하나님께서는 미쁘고 의로우시기에 우리가 그 앞에 자백할 때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빛으로 나아갈 때 더한 축복을 주십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작은 어두움이라도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쁘고 의로우시기에 우리가 자백하면 그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문제는 자신이 어두움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마다 잘못이나 죄로 여기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곧 각기 양심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과 교양이 다르며, 나름대로 세워 놓은 가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 죄 없다 할 수 없는지, 또 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없다 할 수 없는 이유

요한일서 1장 8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을 보면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기를 통해 그 죄성을 이어 받았기에 결코 죄 없다 할 수 없지요. 이것이 바로 원죄이며, 이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러 지옥불에 떨어지는 무서운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을 뵐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23, 5:12).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약 2천여 년 전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롬 3:24, 5: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요 1:12).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 해도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성결의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근본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버리지 못한 악의 모양들로 인해 순간적으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해 죄를 짓기도 하고, 알면서도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죄를 짓기도 하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전한 성결에 이를 때까지는 그 누구도 스스로 죄 없다 할 수 없고, 만일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가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빛으로 비추기에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 있으면 깨닫게 되지요. 그러니 진리가 그 속에 있다면 온전한 성결을 이뤄 어두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결코 죄 없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요일 1:9), 자백한 것은 더 이상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2. 하나님의 법 안에서 '죄'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죄'란 국가나 사회, 또는 어떤 집단이 정해 놓은 법을 어김으로써 그 결과 위반한 사람에게 벌을 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행위나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으로서(빌 3:20), 하나님 나라의 법인 영계의 법을 지켜야 하며 이것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영계의 법은 영의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한 대로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것이 불법이요 죄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체가 이미 죄가 되지요(요 16:9). 그러면 하나님 법 안에서 죄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행함으로 지은 죄 곧 육체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통해 벌을 받게 되고,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고후 5:10 ; 갈 5:19~21).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다 해서 처음부터 모든 육체의 일을 단번에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빛 가운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기도해 나갈 때 비로소 하나씩 버려 나갈 수 있고, 버려 나가는 이 행함이 믿음이며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있으면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돌이켜야 합니다. 이렇게 자백하며 힘써 버려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다 버릴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육체의 사람이라 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지요. 자백하고 돌이켜 나가면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받아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으로 지은 죄 곧 육신의 일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에 품은 온갖 악들이 어두움이며 죄입니다(롬 14:10 ; 약 4:11~12).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나타난 불법만이 죄였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마음에 품은 불법까지 죄가 됩니다.

구약시대와는 달리, 신약시대에는 성령을 의지하여 마음에 할례를 받아가면 능히 마음의 죄까지도 버려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할례를 통해 변화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 안에 거하므로 마음에서부터 온전한 빛의 행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빛은 용서와 사랑, 자비입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모든 것을 선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반대되는 판단, 정죄, 미움, 시기, 질투 등 어두움의 것을 마음에 가지고 있다면 단지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 않았다 해서 죄 없다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더욱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감으로(요일 5:3) 빛에 속한 열매들을 맺어야 합니다.


3. 어두움 같지 않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두움인 것

하나님 말씀으로 밝히 드러나는 어두움은 발견해 벗어내기가 어렵지 않은데 언뜻 보기에는 어두움이 아닌 것 같은데 근본이 어두움인 분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해 낙망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남에게 악을 행하거나 마음에 시기, 질투의 형태로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두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에 속한 영적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고전 13:6). 상대가 나보다 더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을 볼 때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지요.

다른 예로, 자신은 진리를 좇는다고 생각했는데 화평함이 깨지는 경우입니다. 가령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체 의견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이끌었는데 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것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빛을 좇았다면 반드시 화평함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화평은 내가 옳더라도 비진리만 아니라면 상대에게 맞추어 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누구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결국 이런 빛에 거하지 않았기에 어두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자기 보기에 옳다 여겨지므로 어두움이라 생각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일을 지시하거나 지시를 받는 경우,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에 따라 각각 그 반응이 다른 것을 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일을 시킨 사람은 "내가 지시해서 한 일이니 내 공로다" 하고, 일을 직접 한 사람은 "내가 했기 때문에 내 공로다"라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서로가 어찌하든 책임을 모면하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전혀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고 도리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이렇게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 자체를 버려야 설령 누군가가 큰 잘못을 했다 해도 사랑으로 그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빛에 속한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함께한 것만으로도 책임을 느끼고 자신의 탓으로 돌릴 뿐 아니라, 애매히 고난을 당하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해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시며 죄 있다 하지 않으시지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백할 마음이기에 의롭게 여기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이후 그가 함께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지키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4. 빛 가운데 거하려면 자백하고 돌이켜야

자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만이 아니라 죄를 고백한 후에 철저히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럴 때 주님의 보혈이 그 죄를 씻어 주십니다. 그런데 혹여 여전히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요일 1:6).

다윗 왕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받을 만큼 빛 가운데 행했지만 처음부터 흠 없이 온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그 여인이 임신을 하자 이 사실을 은폐하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하다가 계획이 거듭 빗나가니 나중에는 우리아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하는 엄청난 죄까지 범하게 됩니다. 이는 바로 마음 안에 있던 육신의 정욕 즉 자기에게 좋을 대로 취하고자 하는 마음과 눈을 통해 역사되는 안목의 정욕 등의 어두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의 죄를 지적하시니 다윗은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고, 반역한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연단의 시간이 있었지만 다윗은 결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지요. 심지어 백성 중에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며 욕하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에 요동함 없이 참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수용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진정 회개하며 돌이키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시고, 연단을 통해 흠 없이 빛에 거할 수 있는 온전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미쁘시다' 한 것은 상대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보시고 허물까지도 사해 주심을 말하며, '의로우시다'는 것은 자백하고 돌이키는 사람을 어려움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변화되는 만큼 더한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에 있으면서 빛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일단 빛으로 나오면 무한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자백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자녀의 간구에 즉시로 응답해 주십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거짓 없이 비추어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빛의 자녀가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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