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오후 2:24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최신 업데이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주의 말씀은 등이요 빛이라
'하나님은 빛이시라' 시리즈 8

10487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0~105)



주의 법도를 지키면 명철이 임하여 앞길이 환히 보이니 방황할 필요가 없고 지름길을 신속히 찾아 나감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언제나 앞길을 환히 비춰 주는 빛이 있다면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빛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환히 밝히는 등이요, 빛이 되어 주신다면 조금도 막힘이 없고 힘들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건짐을 받고 생명과 평안에 이를 수 있을까요? 주의 법도를 지키면 명철이 임하여 앞길이 환히 보이니 방황할 필요가 없고 지름길을 신속히 찾아 나감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1. 인생의 등과 빛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시편 119편 100절에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했습니다. '명철'이란 영적으로 길이 환히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은 길이 환히 보이므로 노인보다 명철함이 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의 명철함을 노인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노인'은 단순히 나이만 많은 연장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통해 사리를 밝히 분별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을 말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연륜이 쌓여 명철함이 뛰어난 사람을 노인에 비유한 것이지요.

이처럼 인생의 경륜이 풍부한 사람에게 명철한 길을 제시받아도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 지혜의 근본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예지하실 뿐 아니라 인생의 처음과 끝을 성경에 모두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좇아 행할 때 세상의 어떤 길보다 더 확실하고 튼튼한 길을 가는 것이니 결코 무너질 리 없고 좌우로 치우쳐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을 값지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길은 무엇보다 주의 말씀을 발에 등, 길에 빛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2.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 내 길에 빛이 되려면

첫째, 발을 금해 모든 악한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1절에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했습니다.

여기서 발이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함에 따라 그대로 움직여 주는 몸의 지체가 발이기 때문입니다. 곧 발은 영적으로 세월의 흐름과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 가느냐를 비롯해 삶의 전반적인 과정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않았다'는 것은 악한 일을 도모하지 않고 동참하지 않았으며 오직 선한 일에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제9대 왕인 웃시야는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통치 초기에는 선정을 베풀어 유다를 번영케 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주변의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솔로몬의 통일왕국 이래로 가장 부흥한 국가를 이루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부강해지자 교만해져 악한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월권하여 자신이 하려 한 것입니다(대하 26:16). 이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그는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별궁에 거해야 했으며, 죽은 후에도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는 비운의 왕이 되고 말았지요.

이와 달리 요셉은 악한 길로 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정도를 지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축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어 애굽의 총리대신이라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지요. 이처럼 악에서 떠나 오직 주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늘로부터 지혜와 명철이 오고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버리는 것이 주의 법도를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며, 노인보다 승한 명철을 얻는 길임을 알아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2절에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습니다.

'주의 규례'란 대대로 지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들로 일정한 규칙과 법과 제도를 말합니다(출 12:17 ; 레 16:34 ; 대상 23: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규례를 대대로 지킬 것을 명하셨는데, 이는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행했던 모든 의식을 오늘날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즉 구약에서는 육의 할례를 했지만 신약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를 하듯이 규례 역시 그 영적인 의미를 계승하여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모든 주의 규례를 떠나지 않고 지켜 나가면 결국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주의 규례를 떠나는 만큼 원수 마귀 사단이 마음에 비진리와 악들을 채우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나가면 마음에 비진리가 쌓일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날마다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사람이 주의 규례를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은 그 전의 어떤 왕보다 악한 왕으로서 이방 신들을 숭배하여 심히 하나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반대로 같은 시대의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요. 한번은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을 도와 아람과의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전투에 임할 때 아합 왕은 혹시 적군이 자신이 왕임을 알아보고 죽일까 하여 변장까지 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간 반면에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은 채로 싸우지요. 그런데 전쟁이 맹렬한 가운데서 적군에 의해 죽은 사람은 아합 왕이었습니다. 죽은 후에는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피를 개들이 핥는 수치까지 당해야 했지요. 이것은 바로 주의 규례를 떠나 악을 행하는 사람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지요(왕하 18:6~7). 한번은 앗수르가 유다를 침략해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는데, 이때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의 사자가 나와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쳐서 송장이 되게 하셨습니다(왕하 19:35).

이처럼 주의 규례를 떠나지 않으면 앞일을 내다볼 수 있는 명철이 주어지고, 또 그에 따라 방법론을 세워 나가면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주의 말씀을 꿀 먹는 것보다 더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성경 인물로는 다니엘을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다 지파에 속한 왕족으로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1차 침입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이 융화정책의 일환으로 포로들 중에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들을 뽑을 때 다니엘도 그중에 하나로 뽑혀 왕궁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3년 동안 왕이 지정해 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어야 했지요.

그러자 다니엘은 비록 포로의 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해 줄 것을 환관장에게 구합니다. 왕의 진미 중에는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짐승의 고기 등 하나님의 금하시는 것이 있을까 염려됐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10일 동안 시험적으로 행한 결과 다니엘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더욱 아름답고 윤택해 결국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영생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 말씀을 꿀과 같이 달게 먹었기에 그 삶이 참으로 가치 있고 형통했습니다. 포로의 신분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는가 하면, 사자굴에 던짐 받았으나 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살아 계신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었지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꿀보다 달고 맛있게 먹는다면, 곧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행한다면, 주의 말씀이 등이요 빛이 되므로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건짐을 받고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됩니다.

넷째,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4절에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면 왜 주의 법도로 명철한 사람이 되면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는 것일까요?

주의 법도를 지키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문제의 해답으로 주어지니 길이 밝히 보입니다. 이렇게 명철하게 되어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하고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이 구별되면 자연히 진리를 굽게 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악이 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일 때는 몸이나 옷에 오물이 묻어도 별로 상관치 않고 그저 노는 것에 여념이 없지만 점차 자라면서 지식을 배우게 되면 오물이 더러운 것인 줄 알아 물로 씻거나 닦아 내려 합니다. 이처럼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불결한 것과 청결한 것을 구별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러한 상대성의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즉 죄가 무엇인지,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지를 알지 못할 때는 내 안에 죄가 있어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비추어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면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주 안에서 명철한 자가 되어 미워해야 할 모든 거짓 행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있어서 악한 말, 망령된 말, 진실치 못한 말, 거스르는 말, 속이는 말, 패려한 말, 비방하는 말, 헛된 말, 원망하는 말 등이 있습니다.

둘째로,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가령 장사를 하는 사람이 물건 값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거나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는 것,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이 남을 속이는 것이지요.

셋째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한 것 이상의 것을 얻으려 한다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 허황된 것을 바라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결국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거짓 행위를 미워하라'는 것은 감정을 품거나 분을 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영적으로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곧 악을 버리는 것이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며, 친히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하지요.

또 죄는 미워하되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며, 고아와 과부 등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것 등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행위를 미워하고 오직 진리를 좇아 행해야 몸도 영혼도 안전하게 지킴받고 보전받는 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범사에 형통함을 입어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