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 시편 37:5~6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그 의가 빛같이, 그 공의가 정오의 빛같이 드러나서 승리와 풍요를 얻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냅니다
오늘날 사랑이 식어지고 불법이 성한 세상은 기본적인 윤리마저 붕괴된 지 오래 되었고, 도처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해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하는가 하면, 행악자가 기승을 부리는 등 때로는 정직한 사람보다 오히려 악인이 대접받고 융성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일까요?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한 대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빛과 어두움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아직 버리지 못한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하지요. 과연 여호와를 기뻐하는 신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여섯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 마음가짐에 관한 분야
시편 37편 1절을 보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어두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투기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행악자의 불의를 목격하는 사람은 그들이 잘되는 것 같아 보이면 이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내심 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혹을 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빛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불평이나 투기라는 악의 모양이 있을 수 없기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거나 악인을 부러워하는 것 자체가 자신도 악인이 될 소지가 다분히 있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호와를 기뻐하는 신앙의 적극적인 자세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며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는 것입니다(시편 37:3).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성실한 은혜에 감사함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2.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분야
시편 37편 2절에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했습니다. 여기서 풀이나 푸른 채소는 일시적인 것, 특히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지 않으시는 무상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악인의 잘됨은 풀이 곧 베임을 당하고 푸른 채소가 쇠잔해짐과 같이 일시적인 것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잠언 24장 19~20절에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했습니다. 이는 악인의 종국은 멀지 않지만 의인의 영광은 영원하다는 것을 대비시켜 주시면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보호하사 약속된 축복을 차고 넘치도록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악인의 무너짐은 속히 진행되며 누리는 번영은 덧없고 잠정적일 뿐임을 안다면 악인의 형통함을 불평하며 시기하고 질투해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8절에는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했습니다. 악인에 대해 분을 품고 불평한다면 자신 역시 악한 일에 동참하는 행위가 되므로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을 거듭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불평하며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은 그 배경이 무엇이든지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더욱 악으로 치닫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악의 불식은 분을 내어 불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롬 12:21).
3. 여호와를 기뻐하는 방법에 관한 분야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믿고 행하는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믿음, 생명도 드릴 수 있는 믿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곧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지요(히 10:22).
그런데 시편 37편을 통해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분야는 자기 길이 형통한 사람을 불평하지 않으며, 여호와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시 37:7). 여기서 자기 길이 형통한 사람이란 자신의 방식에 따라 번영하는 사람을 말하며, 시편 37편 1절을 통해 행악자를 인해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거듭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한 것처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는 것은 바로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시고 앞서 행하실 수 있도록 믿음으로 맡기는 것이며, 응답의 문을 여는 담대한 행함입니다. 따라서 가장 적극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맡기며 잠잠히 참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4.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의 결과에 관한 분야
앞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일시적인 형통함을 불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인이 잘되는 것을 투기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성숙한 단계는 자기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신앙입니다(시 37:5~6).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니 원수도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행할 때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간섭하셔서 그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빛이 비추이면 사물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나듯이 하나님의 간섭은 자기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며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에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그 의가 빛같이, 그 공의가 정오의 빛같이 드러나서 승리와 풍요를 얻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 없는 사람과 같이 좌우로 치우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의를 추구하며 산다 하면서도 자신의 악을 버리지 못하여 자기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기에게 해를 가하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금방 불편해지고 분하여 견디지 못합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신의 원통함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려고 하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고자 하지요. 이는 설령 조직의 화평이 깨어지고 상대가 고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속이 시원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자기 보기에 아무리 의로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감정과 악을 이기지 못하는 어두움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한 반면 상대의 잘못은 용납하지 않으려 하고 서슴없이 비판하고 헤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선하고 온유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상대방의 허물이나 단점을 들추지 않으며, 손가락질 받는 사람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기뻐하시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차원에 이른 사람과 동행해 주시며 그 의를 빛같이, 그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 주십니다.
5. 여호와를 기대하는 사람의 기업에 관한 분야
시편 37편 9~11절에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진정한 축복인 줄을 알고 그분만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하는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세상 만물이 운행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보상과 징벌 등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깁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보아도 그렇듯이 악인들은 그 쌓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차지할 뿐 아니라 풍부한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짐짓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잠시 잠깐의 영화를 누리다가 결국 사라지게 되지만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 기대하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는 온유한 사람은 땅 곧 이 세상의 축복만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차지하게 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6. 여호와를 기뻐하는 신앙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에 관한 분야
한 예로, 어떤 사람은 구약성경에 소개된 룻이라는 여인의 모습 중 나름대로 자신이 닮은 점이 있다면 '나도 부모에게 효도를 하니까', '나도 정한 바를 잘 지켜 행하니까' 등을 들어 마치 다 된 것처럼 자신의 어두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하나님께서 룻을 높이고 기뻐하셨던 데에는 룻의 단면적인 착함이나 의로움, 진실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말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룻의 행함이나 삶의 방식, 그리고 룻의 마음 됨됨이와 인물 됨됨이를 빛 되신 하나님께서는 다 감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은 그만큼 기록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굳이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없기에 잠깐 언급하고 넘어갔다 해도 그들의 중심과 인물됨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믿음의 증인들을 본받아 빛으로 들어가려면, 표면적인 장점만 볼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됨에 관해 그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종합해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는 끝이 없고 무한한 세계이니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신을 연마해 정금과 같이, 견고한 보석과 같이 다듬어 온전케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여러분의 의로움이 큰 빛을 발하게 되시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도 넓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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