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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당신에게 있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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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_'영적인 사랑' 시리즈 1


10333
2019년 1월 6일 일요일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고린도전서 13:1~3 -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영적인 사랑과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영적인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이러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가득 채워질 때라야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곧 영적인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생명을 살리는 실속 있는 사랑

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의미하며,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하지요. 즉 유창한 사람의 말이나 천사의 말처럼 아름다운 말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시끄러운 꽹과리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사랑이 담긴 말은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지요.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라고 묻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한다면 평소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스스로 뒤집는 것과 같고, 반대로 "용서하라" 한다면 율법을 거스르는 명백한 죄가 됩니다. 이처럼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몸을 구푸리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신 후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결국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지요(요 8:6~9).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여인의 생명을 살리신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한 것이니 잘못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도나 마음은 예수님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어찌하든 영혼을 살리려는 마음이었지요.

우리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무조건 상대를 설득하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고 거슬리는 부분을 고치려 합니다. 비록 그 말이 백 번 옳다 해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면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고 참 생명을 줄 수도 없습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아 나의 의와 틀 가운데 말하고 있지 않은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상대를 위한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목마른 영혼을 시원케 하고 아파하는 영혼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생명의 물이요, 값진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2. 자신을 희생하는 행함 있는 사랑

2절에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면 장래 일을 알고 말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장차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에서 7년 환난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이처럼 장래 일을 알고 예언하는 능이 있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자기 유익에 따라 변질되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고전 1:18).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성취하기까지 비밀로 하셨습니다(고전 2:6∼8). 원수 마귀 사단은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죄 없는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렸지요. 이처럼 십자가의 도에 대한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안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식'이란 학문적인 깨우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성경 66권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직접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하지요. 머리로만 아는 데 그치면 오히려 그 지식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잣대가 되는 등 선하지 않은 목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란 큰 믿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표적과 기사 등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체험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데, 믿음이 크다 해서 사랑이 큰 것은 아니지요. 영적인 사랑은 무엇보다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천국에 상급이 되는 사랑

3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하늘의 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축복을 주신다면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니 결국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지요. 반면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2~4).

구제는 무엇보다 영혼을 살리는 구제가 되어야 하고, 성령의 주관을 받아 상대에게 맞게 해야 하지요. 잘못된 구제는 오히려 상대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사망의 길로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랑으로 구제하면 고넬료처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행 10장).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한 과부는 비록 두 렙돈을 예물로 드렸지만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사람을 의식하거나 억지로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니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며 원망하고, 심지어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며 판단 정죄합니다. 이 마음의 저변에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은 충성하고 있다는 높아진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불평, 불만으로 자신도 힘들 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며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설령 드러내 놓고 불평하지 않는다 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낙심하고 열정이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누군가 지적하면 힘이 빠지거나 지적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도 하지요. 또 자신보다 인정과 사랑을 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충성해도 참된 기쁨이 없고, 심지어 사명까지 놓아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이나 남들이 볼 때만 열심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보지 않을 때에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 시늉만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일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을 하려 하지요. 윗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에만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이 있는데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적인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중심에서 하나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 여기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묵묵히 헌신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그 희생 안에 참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이 다하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셨지요(눅 23:34). 이런 참된 희생이 있었기 까닭에 하나님께서 친히 높여 주시고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자리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빌 2:9∼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삶의 희망도, 살아갈 의욕도 사라집니다. 이처럼 사랑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물며 그 사랑이 변함없는 사랑, 영적인 사랑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 영원히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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