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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투기하지 않는 것_'영적인 사랑' 시리즈 4


10616
2019년 1월 27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4 -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시험을 본 후 틀린 문제를 흘려버리지 않고 따로 정리하여 점검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왜 틀렸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취약한 분야를 단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오래 참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온유와 덕으로 상대를 품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언행을 살펴본다면 짧은 시간 안에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에 다룰 영적인 사랑의 항목은 '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사랑을 받을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보다 지식이 많고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대가 승승장구하면 부러움을 느끼지요. 심지어 상대가 밉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어 합니다.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뭔가? 왜 나는 늘 이 모양인가?'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낙심하는 마음은 시기, 질투가 아니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다면 상대가 잘될 때에 낙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낙심하거나 자책하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남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악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그러면 투기에 대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이성 간의 사랑에서 비롯된 투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외삼촌 라반의 딸들로서 자매지간입니다.

언니 레아는 외삼촌의 속임수로 뜻하지 않게 맞이한 아내였고, 동생 라헬은 야곱이 연애하여 무려 14년이나 외삼촌에게 봉사하고 얻은 아내였으니 야곱은 자연히 라헬을 더 사랑했지요.

그런데 언니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끊임없이 언니를 투기합니다. 남편을 괴롭히기까지 하지요(창 30:1). 이후에도 라헬과 레아는 자신들의 몸종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면서까지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툽니다.

만일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었다면 상대가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을 기뻐했겠지요. 결국 투기는 레아와 라헬, 야곱 모두를 불행하게 했으며, 나아가 자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2. 상대가 나보다 나으므로 투기하는 경우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에 부러움을 느끼는 분야도 다릅니다. 그러나 대체로 상대가 부유하고 지식이나 외모, 능력 면에서 앞서거나 더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투기가 일어나지요. 이러한 모습은 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경쟁자의 약점을 알리기도 하고 누명을 씌워 상사의 눈밖에 나도록 훼방합니다. 학생이라면 공부 잘하는 친구를 따돌리거나 선생님들의 사랑받는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있지요.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형제간에 다투며 헐뜯기도 합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인류의 최초 살인자 가인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자 불타는 투기를 견디지 못하고 아벨을 죽입니다.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짐승을 잡아 드리는 피의 제사에 대해 누누이 듣고 배웠을 텐데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양의 첫 새끼로 피의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사만 받으신 것이지요. 그럼에도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기는커녕 동생을 투기해 결국 죽이기까지 합니다.


3. 믿음의 형제간에 투기하는 경우

질서나 직분, 또는 신앙이 앞서거나 열심히 충성하는 형제, 자매를 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자신과 나이나 직분이 비슷하거나 잘 아는 사람에 대해 많이 나타납니다. 상대가 어떤 잘못이나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부글부글하지요. 서로를 잘 알다보니 자신보다 별로 나은 것도 없고 부족함도 많은 것 같은데 사랑받고 인정받으니 불만스러운 것입니다.

만일 상대가 자신이 섬겨야 하는 윗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순종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주변에 윗사람의 허물을 전하며 어찌하든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또한 나보다 나이나 연륜, 직분이 낮은 사람이 앞선다면 시기, 질투를 강하게 느끼지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게 다윗은 나라를 구한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사울과 다윗을 환영하던 백성이 다윗을 칭송하는 일(삼상 18:7)로 인해 사울은 투기로 불타올라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 하지요.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투기로 인해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 자손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에 속한 다단과 아비람 형제가 모세와 그를 돕는 아론에게 불만을 품습니다. 자신들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니 불쾌했고, 자신들도 지도자 자리에 오르고 싶은 시기심도 있었지요. 그래서 은근히 사람들과 접촉하여 250명의 동조자를 얻은 뒤 이참에 주도권을 얻고자 합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찾아가 따지지요(민 16:3).

모세는 정면으로 비난하는 그들을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 기도한 뒤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를 구하지요.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땅이 갈라져 그들과 그 가족,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물건이 빠지고 그들에게 동조했던 250명은 불에 소멸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투기한 이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모든 백성에게도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을 판단 정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4. 헛된 것을 위해 투기하는 어리석음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투기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느 정도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앞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이 행한 악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지요. 자신이 뿌린 악의 대가로 병을 얻거나 가정과 일터에 재앙을 당하는 것입니다.

투기는 스스로 자신을 상하게 하니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따라서 남보다 앞서고 싶다면 투기함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은 오직 자신의 안위와 자랑을 위해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구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린다 해도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된 것이기에 결국 안개와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전 12:8).


5. 투기와 영적인 욕심은 달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투기하는 이유는 믿음이 작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작고 사랑이 적으면 세상의 부와 명예, 권세 등을 더 갖기 위해 투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주 안에서 맺어진 형제, 자매가 장차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 것을 믿습니다. 설령 아직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라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지요.

여기에 참사랑이 임한 만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니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내가 잘된 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고자 주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곧 영적인 욕심을 갖게 되지요(마 11:12). 영적인 욕심은 투기와는 분명 다릅니다.

주 안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변화되어 뜨겁게 충성하려는 마음은 중요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서 진리를 벗어나거나 상대를 실족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주변을 살피고 자신의 유익보다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화평을 좇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투기는 악하고 추한 마음의 죄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투기하는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습니다(갈 5:19~21). 이는 눈에 보이도록 드러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헛된 것에 연연함으로 형제를 시기하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랑의 마음을 이루어 영원한 천국을 침노하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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