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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_'영적인 사랑' 시리즈 7


10001
2019년 2월 24일 일요일


당회장 이재록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4~5 -



매너(Manner)나 에티켓(Etiquette)이란 사람의 몸가짐과 행동방식, 태도나 예절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에티켓이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사회적 불문율이라면, 매너는 에티켓을 얼마나 적절히 표현하느냐에 따라 평가됩니다.

바른 몸가짐과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요. 더구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인사법이나 대화법 등 나라나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게 마련이지요.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무례히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경향이 있지요. 허물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예의 없는 행동으로 나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진정 사랑이 있다면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값비싼 보석이 있다면 매우 귀중히 다룰 것입니다. 하물며 진정 상대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소중히 대하겠습니까?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무례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례한 경우와 사람에게 무례한 경우입니다.


1.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는 경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정작 그 말과 행실을 보면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일 중 대표적인 것이 예배 시간에 조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상사 앞에서 조는 것도 무례한 일인데 어찌 하나님 앞에서 무례히 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배 시간에 옆 사람과 대화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도 매우 무례한 일입니다. 이런 행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성의가 부족함을 단적으로 말해 주지요.

설교자 또한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나?' 하며 염려하여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예배 도중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예배를 돕는 사명 때문에 나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도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마칠 때까지 모든 순서를 마음 다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찬양이나 기도는 물론 헌금이나 광고 시간에도 집중해서 정성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공식적인 예배 외에 찬양예배, 구역예배 등도 동일한 마음으로 정성껏 드려야 하지요. 정성껏 예배드리려면 무엇보다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항상 먼저 기다리고 계시므로 우리도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 밖에도 술, 담배를 하고 예배드리는 것,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 어린 자녀들이 떠들고 장난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 예배 시간에 껌을 씹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예배를 위한 몸가짐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입던 옷 그대로 아무렇게나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복장은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 알기에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수요예배나 금요철야예배는 직장에서 바로 오는 경우가 많기에 작업복 차림으로 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무례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어찌하든 예배에 참석하려는 마음을 받으시고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사랑하는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간혹 다급한 일로 기도하는 사람을 툭툭 쳐서 기도를 중단시키거나,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고 기도를 곧바로 멈추는 것도 하나님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무례함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번번이 무례를 범한다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생겨 질병, 사고 등 갖가지 문제를 만나거나 오랫동안 기도해도 응답받기 어렵습니다.


2.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시 11:4). 구약 시대에 성소는 거룩하게 구별된 공간으로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성소 안쪽의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차례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은 주님의 은혜로 누구나 성전에 들어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10:19).

성전이란 예배를 드리는 곳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속한 마당과 부속 시설 등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전 어디에서든지 말과 행동 하나도 주의해야 하지요. 큰 소리로 다툰다든지, 사업이나 오락 등 세상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물을 함부로 다루어 상하게 하거나 낭비해서도 안 되며, 헌금봉투 하나라도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되지요.

더욱이 성전 안에서 매매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에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짐승을 팔고 환전하는 상인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제사에 쓰일 제물이라도 용납지 않으셨으니 개인의 필요에 따라 매매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교회 마당에서 바자회를 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성전의 모든 곳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구별된 장소입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모임을 갖는 경우, 성전의 거룩함에 대해 자칫 무감각해져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다면 무례히 행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3. 사람에게 무례히 행하는 경우

요한일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무례한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보통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다 보니 무례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밤늦게 전화한다거나 바쁜 사람에게 전화해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지요. 또 약속 시간에 늦는 것, 남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가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간혹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데 일일이 따지는 것은 오히려 정감이 없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백 퍼센트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내 편에서는 친근감의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히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라 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여 상처를 주는 일도 많고,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에게 무례히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 해서 무례하게 대해 쉽게 반말하기도 하고, 무시하고 명령하는 태도로 불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부모나 스승, 연로하신 분 등 마땅히 섬겨야 할 대상에게도 중심에서 섬기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자는 세대가 변해 어쩔 수 없다 말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이 있지요. 레위기 19장 32절에도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 사이에도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세상의 법과 질서도 잘 지켜서 무례히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교통 법규를 어긴다면 이는 많은 사람에게 무례한 것이지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말과 행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4. 모든 기준이 되는 사랑의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식사하거나 일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합니다. 그만큼 서로 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절도 많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배움과 지식이 다르고 나라와 민족마다 문화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 삼아야 무례히 행치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의 법'이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법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해 나가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양을 갖춰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랑의 법에 담긴 또 한 가지 의미는 바로 '배려'입니다. 깜깜한 밤에 사람이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마주 오던 행인이 보니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행인이 그에게 물었지요. "당신은 앞을 보지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그는 "당신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배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반면 무례함이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음,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했으니 늘 주님을 대하듯 섬기는 마음으로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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